시장에 찬가가 울려 퍼졌다. 1989년 12월12일 발표한 부양책으로 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상한가 종목만 980개. 종합주가지수는 844.75포인트에서 사흘 만에 928.10포인트로 치솟았다. '12ㆍ12부양책은 투신사의 무제한 주식 매입, 기관투자가 범위 확대, 주식 물량공급 축소 같은 초대형 재료를 한꺼번에 담았다. 백미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를 떠받치겠다'던 재무부 장관의 발언. 돈을 찍어내서라도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의지는 성공했을까. 철저하게 실패했다. 주가는 1990년대 초반 내내 내리막길을 걸었다. 부양책의 일부였던 보유주식 담보주식 매입(위탁증거금의 대용증권 대납) 허용 조치는 수익이 원금을 밑돌아 증권사에 배상해야 하는 '깡통계좌'를 양산하며 수많은 개미들을 울렸다. 가장 큰 후유증은 투신 부실화. 연간 400억원 이상의 순익을 올리던 알짜배기 양대 투신은 정부 보증 아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수조원어치의 주식을 샀다가 3년 만에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투신사를 구제하기 위해 1992년에는 사상 세번째로 한은의 특별융자 2조9,000억원을 비롯해 국고 여유자금 3,0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악순환은 여전했다. 관치가 주도한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훨씬 전부터 내출혈 상태였던 셈이다. 외환위기로 더 불거진 투신권 위기는 공적자금 20조원을 투입하고도 정상화하지 못한 채 3대 투신이 외국계와 은행ㆍ증권사로 팔려나갔다. 인기에 연연하던 '물 정부'가 대증요법으로 시행한 '12ㆍ12증시부양책' 20주년, 시장은 얼마나 변했을까. 국내총생산은 20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했지만 종합주가지수는 1.96배 올랐을 뿐이다. 시가총액 증가율 9.99배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