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 그후 10년] '재벌 길들이기'로 정경유착 심화

전두환정권, 중화학 투자조정과정서 유착<br>노태우 정권선 '대구 건설 3인방' 급성장<br>퇴임후 수천억원대 뇌물·비자금 드러나


‘3저(低) 호황’ 속에서 권력과 재벌의 유착은 한층 더 깊어졌다. 전두환 정권 시절엔 중화학 투자조정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노태우 정권에선 부동산 바람을 타고 ‘대구 3인방’ 건설업체가 급부상했다. 신 군부가 박정희 정권 때와 달랐던 것은 재벌의 힘이 정치권력과 엇비슷해져 강력한 견제를 가했다는 점이다. 80년대초 전두환 정권은 명성그룹과 국제그룹을 공중분해 시켰고 노태우 정권도 초기에 청와대가 직접 재벌개혁을 진두 지휘하기도 했다. 신군부 주축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80년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고자 공정거래법을 입안하고 86년 12월 말 법을 개정해 규제조항을 강화한 데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 장치가 도입된 것도 이때였다. 80년 전두환 군사정권 출범 때,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군화의 위세’에 눌려 금쪽 같은 동양방송(TBC)을 내놓았다. 부친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 역시 92년 대선 때 당시 노태우 후보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95년 김영삼 문민정부에 의해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다. 박정희 정권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현대도 신 군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80년 당시 전 전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던 국보위로부터 한국중공업의 전신인 현대양행을 포기하도록 종용 받았다. ‘산업합리화’ 방안이라는 명분아래 정 명예회장은 중공업과 자동차 산업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 받았다. 정 명예회장이 결국 현대양행을 넘겨주자 전 전대통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파트 건설 호황기를 맞아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개발 때 빛을 본 우방을 비롯한 청구, 보성 등 주택업계의 ‘대구 3인방’이 이름을 날린 것도 노태우 정권 때다. 정치권과 관계를 맺지 못한 기업들은 속절없이 사라져갔다. 80년대 초 국내에 콘도 미니멈을 소개하면서 레저업계의 기린아로 성장, 순식간에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관광 재벌로 컸던 김철호 명성 회장은 83년 탈세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좌절을 맛봤다.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신군부와 악연이 깊은 인물이다.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라섰지만, 85년 별 이유로 없이 몰락했다. 표면적으로는 부실기업 인수와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당시 시중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떠돌았다. ‘정경유착’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은 드러난 것만 해도 2,259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약 5,0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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