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가 직장인 김모씨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 방문한 은행 창구에서 일본펀드 가입을 권유받았다. 지난해 은행 직원의 추천으로 가입한 중국펀드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귓등으로 흘렸지만 ‘이번에는 혹시…’라는 생각을 온종일 떨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중국펀드 안내 전단지가 꽂혀 있던 선반에는 어느새 일본펀드와 미국펀드 안내 브로슈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해외 펀드=이머징마켓 펀드’라는 공식이 성립된 국내 펀드시장이지만 최근 들어 판매사들을 중심으로 선진국 펀드에 대한 가입 권유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각 증권사들도 선진국 펀드에 대한 ‘비중 확대’ 전망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선진국시장의 모멘텀 회복에 주목할 필요는 있지만 유행을 좇아가는 섣부른 결정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펀드리서치 보고서를 통해 하반기에는 이머징마켓 중심의 투자보다는 선진국과 이머징마켓에 대한 적절한 투자 비중 조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동유럽 및 중남미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동시에 유럽 및 일본시장의 낮은 변동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미국 및 글로벌 펀드에 대해서도 비중 확대전략을 제시했다. 이병훈 대우증권 펀드리서치파트장은 “엔화 약세에 따른 기업이익 증가와 외국인 순매수 등으로 일본 증시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일본 경제가 내수회복이 더디기는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동양종금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2002년부터 이어진 이머징마켓 증시 강세 현상이 올 들어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선진국시장의 중장기 이익 모멘텀이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럽다. 우선 선진국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기는커녕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선진국 펀드로 분류되는 글로벌주식ㆍ유럽ㆍ일본펀드는 지난주에만 144억원의 수탁액 감소가 나타났고 올 들어서는 7,115억원, 전년 대비 무려 3조5,953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머징마켓에서 본 큰 손실을 확정 짓고 기대수익률이 낮은 선진국 펀드로 선뜻 갈아타기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선진국 펀드가 보여준 부진한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발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때늦은 이머징마켓 추천으로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 이제 와서 또 새로운, 그것도 변동성이 극히 낮은 펀드를 추천하는 것은 상반기의 큰 손실을 확정 지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단기수익률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자산운용계획을 고려한 치밀한 투자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특정 지역만 조정을 받는 게 아니라 동반 약세로 함께 조정을 받는 상황인 만큼 특정 지역으로 갈아타는 전략보다는 브릭스펀드 같이 여러 지역에 분산투자하는 펀드를 중심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