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해외로 내몰리는 기업들

며칠 전 중국출장에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데 시위로 서울시내가 막혔다. 화염병도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같이 버스를 타고있던 외국인들이 무슨 일이냐고 근심스럽게 묻는다. 외국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는 중국 관리들을 대하면서 내심 걱정스럽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는다. 입으로는 외자유치, 동북아경제중심을 외치면서 몸으로는 국내외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꼴이다. 우리 경제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걱정스럽다. 3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우리 경제 잠재 성장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수출만이 나 홀로 성장을 지탱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투자부진이 곧 수출증가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국내 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기업 경영에 대한 매력이 떨어져 기업을 정리하거나 투자를 줄이는 경우다. 요즘처럼 기업해서 돈 번 사람이면 모두 부정을 하거나 종업원들을 착취한 사람쯤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니 열심히 기업을 키우고 싶은 동기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요즘 수많은 기업들이 정치자금으로 인해 범죄집단으로 몰리는 마당에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싶은 기분도, 투자할 여력도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가 주로 해외에 이루어지고, 동시에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도 줄어드는 경우이다. 기업의 해외투자 대비 국내설비투자 비율을 보면 1990년대 중반의 5% 정도에서 최근 급격히 늘어나 10% 대에 육박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2000년도 100억 달러이상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올해는 10억 달러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2002년부터 올해 3월 사이에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설립한 지역본부나 공장은 7건에 불과한 반면, 싱가포르에 46건, 홍콩과 중국에는 무려 73건에 이른다. 기업의 투자활동에 국경이 없어진 지는 오래다. 다국적 기업들은 어디든 투자환경이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간다. 아시아의 경제중심이 되겠다는 우리나라는 마다하고 연 400억 달러가 넘는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중국에 비해 높은 공단가격, 비싼 인건비에 호전적인 노동조합, 높은 세율, 복합한 행정규제, 반기업적 정서 등이 국내 설비투자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소득 1만 달러의 트랩에 걸려있다. 자칫 선진국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성장의 동력을 잃으면 영원한 낙오자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 경제가 활력을 상실하면 커지는 빈부격차, 늘어나는 청년실업, 가계부채와 파산 등의 당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을 살리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투자 기업에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법인세 및 소득세 등의 조세 감면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아일랜드가 활용하는 직접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으로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외국기업 유치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노사관계 불안요인을 줄이는 일이다. 스위스의 네슬레 본사에까지 가서 벌이는 노조의 해외 원정투쟁을 보고 한국에 투자할 다국적기업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어떤 형태로든 고용의 유연성 확보, 노조의 경영권간섭 제한, 노조의 불법 및 탈법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셋째로 기업활동에 대한 자유도를 높여야 한다. 기업의 투자활동을 저해하는 규제, 재무활동과 관련된 규제, 공장입지와 관련된 규제 등을 시장 친화적인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인의 기를 살리고 열심히 일하는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에서 기업인이 한풀이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하며, 사업의 위험을 안고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하는 기업인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김주현(현대경제연구원 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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