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4차 협상이 진행됐을 때 농민단체들은 ‘국내 산업을 다 죽인다’며 시위를 벌였다. 무역자유화는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는데 도대체 무엇이 달라져 이렇게 반발이 거셌을까.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에 신고된 지역무역협정은 38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FTA 또는 유사 FTA이다. 물론 상당수는 FTA보다 수준이 낮은 부분적 무역자유화이지만 FTA는 가장 보편적인 무역자유화의 형태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국제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자유무역협정이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통합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자간 관세를 모두 철폐하지만 제3국 관세에 대해서는 양자가 독립적 권한을 갖고 공동 경제정책이나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는 게 FTA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제조업의 관세는 없어지거나 몇 년 내 사라지는 반면 농산물과 서비스업의 교역 자유화 정도는 더 낮은 게 일반적이다. 또 과거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비관세장벽ㆍ통관ㆍ지식재산권ㆍ경쟁ㆍ투자ㆍ노동ㆍ환경 등 다양한 분야가 FTA 협상 대상이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 1980년대 후반 이후 다자간 협상에서 통상 관련 이슈가 확대돼왔기 때문이다. 관세철폐만을 주로 논의했던 다자간 협상(라운드)은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처음으로 농산물 교역 자유화를 본격적인 협상 대상으로 삼았다. 1990년대 들어와 지재권ㆍ서비스 등의 이슈가 차례로 통상 의제에 추가됐다.
이는 상품교역 범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선진국이 우위를 가진 지식재산권 및 서비스 분야의 장벽 철폐가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공정 무역에 대한 국제분쟁이 늘어나면서 지재권ㆍ보조금 등의 다양한 이슈가 협상 의제로 들어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적어도 선진국 사이에서는 형성됐다.
문제는 다자간 무역규범을 운용하는 WTO 체제에서 양자간 협상인 FTA가 근본적으로 불편한 대상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무역의 효과를 가장 크게 높일 수 있는 방식이고 양자간 무역자유화는 차선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또 양자간 협상은 무역자유화 효과를 배타적으로 향유한다는 점에서 ‘모든 회원국이 동등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다자간 무역규범의 정신과 맞지 않다. 따라서 다자간 무역규범 중 하나인 ‘GATT 1994’에서는 FTA를 포함한 지역무역협정이 다자간 무역자유화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현실의 FTA 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국내 산업의 생산성이나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 하지만 도하라운드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차선으로 양자간 FTA를 추진하고 있다. FTA 대상은 거대 선진경제권이 가장 많은 효과를 볼 수 있고 우리 경제의 선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간주해 미국 및 EU와의 FTA를 추진해왔다. FTA 체결 뒤 일부 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생계를 보장하고 장기적으로 전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협상 주체인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FTA는 상품양허는 물론 서비스 교역 확대, 규제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선택이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EU와의 FTA도 획기적인 교역 증대, 소비자 효용 증대, 국내 규제의 선진화, 경쟁에 따른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