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여당 문패 바꾼다고 경제가 살까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다. 제아무리 크고 힘센 고기도 물이 없으면 죽듯 소비자의 욕구를 읽지 못해 고객을 잃어버린 기업은 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고객만족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고객감동ㆍ고객환희도 낡은 개념이 됐다. 고객졸도,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100번을 졸도시키자는 구호까지 쓰는 곳도 있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선 제품과 친절을 제공함으로써 기절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객중시의 중요성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행정의 수요자인 유권자, 즉 국민들의 지지를 못 받는 정치세력은 도태당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최대관심사는 경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급기야 한자릿수로 떨어졌다고 한다. 집권자의 지지율 하락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심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부시 대통령과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각각 30, 40%대 후반이다. 그런데도 양국 언론은 호들갑이다. 거기에 비춰보면 우리 대통령과 여당은 기능정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취임 전후 지지율이 90%를 넘나들던 대통령과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던 여당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고객만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욕구와 희망을 살피고 충족시키는 국정을 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국민의 최대관심사는 경제였다. 그러나 정부ㆍ여당은 국민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길로 갔다. 말로는 경제를 외쳤지만 정치에 더 매달렸다. 그것도 대화와 타협의 상생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편가르고 서로 적대시하게 만들어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잘못된 정치였다. 그들은 경제에 힘을 쏟으라는 지적을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꼴통의 반발이라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성장보다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경제관과 정책도 문제가 있었다. 이런 국정운영 방식은 정책 불확실성을 더 키워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불렀다. 한마디로 집권세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했다. 잘못된 제품을 내놓아 고객들의 불만과 항의가 쏟아지면 재빨리 사과하고 바꿔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반대였다. 계속 하자투성이 물건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며 오히려 고객 탓을 해댔다. 무지한 국민들이 우리 진심을 몰라준다고. 정치게임에 몰두한 집권세력 열린우리당 창당주역인 정동영 전 의장은 최근 “민생을 외면하고 공리공담에 열중했다”고 토로했다. 철들자 망령난 격이지만 그나마 절절한 자기성찰을 거쳐 나온 진심어린 고백이라면, 또 당과 청와대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다행이다. 때늦은 깨달음이기는 해도 끝내 철들지 못한 채 망령난 것보다는 동정과 실수만회의 여지가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헌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그것도 아니다. 경제회생과 민생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뒷전이고 당의 문패를 바꿔 국민을 현혹하려는 일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문패변경조차도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싸움질로 매끄럽지 못하다. 통합신당 추진은 회사이름을 바꾸고 인수합병(M&A)으로 활로를 모색하자는 것이리라. 퇴출위기에 몰린 부실기업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이제 소비자들은 부실을 그대로 두고 포장만 그럴듯하게 바꾸는 꼼수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동안의 학습효과로 그 정도는 분별할 만큼 현명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진정 사는 길은 정치공학에 바탕을 둔 눈속임보다는 경제를 되살리는 데 주력해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아직도 열두척의 전선이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며 비장한 각오로 싸워 이겼고 나라를 구했다. 참여정부 임기는 아직 열두달 넘게 남았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들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살 길을 먼저 생각하면 반드시 죽게 되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길이 열린다’(生卽必死 死卽必生)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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