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 보험사에 공문을 보내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압력행사다. 은행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보험업계 임원)
“손보ㆍ생보협회가 일관되게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개별 보험사 입장은 각각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공문을 보냈을 뿐이다.”(은행권 방카 담당자)
2단계 방카슈랑스(자동차보험 및 보장성 보험의 은행판매) 시행을 둘러싼 은행권과 보험업계간 갈등이 경제논리 싸움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은행권 내 세(勢) 결집’ 차원을 넘어 제휴관계에 있는 보험사에 방카슈랑스 확대시행에 대한 찬ㆍ반 의사를 묻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양 업계의 대립이 확전 일로를 걷고 있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공문발송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압력’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 여부가 이른 시일 내에 결정되지 않을 경우 공동발전을 도모해야 할 금융산업이 갈등과 반목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중재와 조속한 의사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은행권, 제휴 보험사 압박용(?) 공문발송=
은행들은 지난 25일 전후로 방카슈랑스 제휴를 맺은 보험사에 한장짜리 공문을 발송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은 서울광장에서 3만여명의 보험종사자가 참가한 가운데 ‘방카슈랑스 확대시행저지 집회’를 열었다.
한장짜리 공문의 내용은 단순하다. “귀 보험사의 의견을 향후 방카슈랑스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방카슈랑스 2단계 시행에 귀 보험사는 찬성ㆍ반대 어떤 의견이냐”는 게 주내용. 하지만 방카슈랑스 제휴에서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제휴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한 공문이었다. 보험업계는 이를 ‘협박성’ 공문이라며 정면 반발하고 나선 것.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터라 보험업계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은행권의 설명은 다르다. 한 시중은행 방카슈랑스 부팀장은 “그동안 2단계 방카슈랑스를 준비하며 전산투자나 인력확보 등 기타 부대비용을 많이 쏟아 부었다”며 “시행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투자 및 교육을 중단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각 보험사에 의견을 물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방카슈랑스 팀장은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가 2단계 방카슈랑스에 반대하는 것과 달리 찬성하는 개별 보험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공문을 발송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공정위 제소 검토”=
보험업계는 은행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나올 줄 몰랐다”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보험사의 한 방카슈랑스팀장은 “공문을 받고 한동안 어이가 없었다”며 “방카슈랑스 문제로 은행과 보험사 모두 예민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는 상도의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손해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다수 은행이 공동으로 동일한 내용의 질문을 은행 방카슈랑스팀장 명의로 보내 보험사의 공식의견을 물은 것은 기관간의 예의에 벗어날 뿐 아니라 담합 소지도 있다”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은행의 불공정행위로 보고 정책당국과 공정위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 및 연기 여부에 관계없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 업계의 ‘갈등의 골’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방카슈랑스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면서 방카슈랑스 시행 1년 동안 나타난 부작용을 근절할 수 있는 대안모색 및 은행ㆍ보험업계의 공동발전방안 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