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9월 9일] 태국 왕실의 힐난

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겠다. 지난주 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작은 뉴스에 대한 이야기다. 정정불안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비상사태가 선포된 태국에 대해 우리 정부가 지난 2일 발 빠르게 ‘여행 자제 지역’으로 조정하자 태국 왕실이 현지 한인회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강한 톤으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불만의 골자는 바로 얼마 전까지도 수십만명의 시민이 광화문 네거리에 몰려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하면서 경찰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던 나라가 어떻게 그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데모를 한 태국을 상대로 ‘위험하니까 여행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분류할 수 있느냐는 것. 태국 왕실은 덧붙여 한국정부의 방식대로라면 태국은 수십번도 더 한국을 상대로 ‘여행 자제 지역’으로 통제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 아니냐’는 힐난이다. 어떻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태국의 상황을 광화문 촛불시위와 비교할 수 있느냐며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곰곰 생각하면 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하면 불거지는 길거리 대규모 시위, 쉼 없이 이어지는 거친 파업에다 ‘익명의 사회’가 개개인의 폭력성을 증폭시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흉악한 범죄가 터져나오는 국가.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한국의 모습은 좋은 표현으로 ‘다이나믹 코리아’지만 냉정한 시각으로는 ‘여전히 사회 기저가 불안정한 국가’다. 얼마 전 서울경제신문이 KOTRA 해외무역관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도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해외에서 한국 상품이 나쁜 평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가 낮아서’라는 답변이 83.33%에 달했다. 제품 자체의 내용보다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쁘다는 의미다. 대상은 한국 상품이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굳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꼭 짚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올 한해 국내 기업이나 기업인 주변에서 불거진 각종 뉴스들만 죽 늘어놓아도 답을 알 수 있다. 식구들끼리 아무리 알콩달콩 산다고 자부해도 가끔 생기는 부부싸움의 고함이 담장너머 이웃에게 들리면 여지없이 ‘문제 많은 집’으로 찍히기 마련이다. 사안이 정의를 위한 것이건, 평등을 위한 것이건 ‘문제 있는 집안’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아무리 이웃에게 미소를 보여도 뒤돌아서면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세상사다. 태국 왕실의 말대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안심하고 여행해도 되는 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실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외에 비쳐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의미다. 알려진 모습과 실상이 다르다고 해서 안심하기에는 찝찝하다. 이미지라는 것이 꾸민다고 꾸며지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중첩된 크고 작은 해프닝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 태국 왕실의 지적은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따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밖에서 접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뉴스는 한결같이 파괴적이거나 불안한 내용 일변도이어서 더더욱 그렇게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한발 더 선진화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내부 갈등은 안에서 갈무리할 수 있는 사회적 포용력이 요구된다. ‘우리를 어떻게 그리 생각하느냐’고 이웃에게 날을 세우거나 변명하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증거들을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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