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독립문 이전비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지난 1896년 독립협회의 주도 아래 국민성금을 모아 공사를 시작했으며, 1년 만에 완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사적 32호. 독립문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수많은 근ㆍ현대 유적ㆍ유물이 있지만 독립문만큼 각별한 의미를 갖는 유물이 있을까. 당시 열강의 침탈이 강화되는 속에서 조선 민중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고 있다.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알리자는 취지에 선조들은 하나가 됐다.

하지만 독립문이 그만한 대접을 받느냐는 물음에 이르게 되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독립문은 일제의 압제조차 견뎌냈지만, 1979년 성산로 공사를 하면서 북서쪽으로 70미터 이전되는 수모를 겪었다. 개발이 모든 이데올로기를 압도하던 당시다.


3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양 도성 성곽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였던 동대문 교회 부지를 2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서대문(돈의문) 복원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최근 폭설 속 찬바람을 맞으며 한양도성 전구간을 둘러보며, 복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관련기사



서울시는 고궁의 옛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일제가 끊어 놓은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연결하는 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율곡로를 지하화 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850억원이 넘는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정권이 복원했던 콘크리트 광화문을 헐고 중건 당시의 원래 위치에 목조 건물로 2010년 복원했다. 경복궁의 전각들도 속속 복원되고 있다.

하지만 독립문을 어찌하겠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독립문 앞에는 큼지막한 표지석이 있다. 독립문 이전비다. 뒷면에는 이렇게 쓰였다.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는 독립문지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매설, 그 위치가 길이 보존되도록 했다.'독립문을 불가피하게 이전했지만, 그 정신은 잊지 않겠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이면 더욱 길게 늘어뜨려지는 성산로 현저고가차도의 짙은 그림자에 제 색조차 찾지 못하는 독립문에 과연 이 말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