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5일] 청계천 복개도로 개통

‘고식지계(姑息之計)’ 부녀자나 어린아이가 꾸미는 계책, 즉 당장의 편한 것만을 택해 일시적이며 임시변통의 계획을 이르는 말이다.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는 인순고식(因循姑息)과 비슷한 의미이다. 속담 중 ‘언발에 오줌누기’ ‘눈 가리고 아웅하기’와도 뜻이 비슷하다. 연말을 맞아 한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식지계의 우를 범했는지 한번쯤 뒤돌아볼 일이다. 쓰레기와 오폐수가 흐르는 청계천을 복개하면 그 자리가 곧 깨끗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썩은 물이 흐르던 그 자리에는 소음과 무질서, 쓰레기가 대신했다. 사람들은 일단 눈에 안보이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여긴다. 사실 속에서는 곪고 있는데도 말이다. 1961년 12월5일 공사 착공 4년 만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마무리됐다. 청계천은 원래 북악 인왕 남산에서 흘러든 맑은 물이 합쳐져 동쪽으로 향하다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어우러진 다음 한강으로 흘렀다. 그러나 서울이 커지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생활 오폐수가 쏟아졌고 청계천은 오계천(汚溪川)으로 전락했다. 무허가 판자촌마저 들어차면서 미관도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불결과 악취로 눈살을 찌푸리게 해던 청계천을 철근 콘크리트로 덮어 우선 안보이게 했다. 복개된 곳은 광교에서 오간수교(동대문 부근)까지 2,359m. 광교ㆍ수표교ㆍ관수교ㆍ방산교ㆍ오간수교 등 다섯개 다리도 콘크리트 밑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후 마장동 철교까지 복개구간이 늘어났고 그 위에는 다시 3.1고가도로가 현대화의 상징인양 놓였다. 그러나 복개된 도로 밑에는 여전히 썩은 물이 흘렀고 악취는 여전했다. 콘크리트 밑에서 신음하던 청계천은 40여년 만에 복원됐고 복원된 청계천을 보려고 1,000만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