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4월 6일] 홀드(Hold) 보고서를 추방하라

학창시절의 경험이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시험문제를 받아보니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험시간이 절반 이상 흘렀는데 손도 대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 과목을 담당했던 미국인 교수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교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력한 흔적이라도 보여주라(Show your work)!"고 계속 외쳐댔다. 연필 값은 줄 테니 제발 몇 자라도 더 긁적여보라는 얘기였다. 그저 '더 많이 쓰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터무니없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참 부끄러웠다. 그저 학점 때문에 스스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마구잡이로 풀어놓았다. 있어 도그만, 없어도 그만 철이 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성실하지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경험은 학창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일을 처리했던 경험이 많다는 것을 고백한다. 어떤 직종이건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때론 중요한 성과를 낳기도 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결과를 가져올 때도 많다. 성과를 요구하는 압력이 드센 업종일수록 이 같은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증권사 리서치 분야도 그렇다. 남들은 "하는 일에 비해 엄청난 돈을 받는다"며 시샘 어린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스트레스는 받는 돈만큼이나 엄청나다. 특히 전망이 틀리면 같은 회사 안에서도 용서 못할 역적으로 전락한다. 그렇다고 전망을 제시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학생이 공부하는 게 당연하듯 애널리스트는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존재이유다. 하지만 주가전망이 그리 쉬운가. 주가는 온갖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전망이 맞을 때도 꽤 있지만 틀릴 때도 많다. 이러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게 '홀드(Hold)' 보고서다. 증권가에서는 미묘한 문제를 건드릴 때 어김없이 애매모호한 단어나 영어를 동원한다. 홀드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자신할 수 없으니까 그저 주식을 들고 있으라는 게 골자다. 최근 들어 홀드 보고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상당수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홀드 보고서를 양산했다. 1ㆍ4분기 국내 기업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유럽 재정위기 등 외부 악재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중한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이 마치 적금을 불입하듯 꾸준히 주식을 사들이자 코스피지수는 어느새 1,700포인트선을 넘어섰다. 3월 중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6%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주가가 그 이상 오른 종목은 수두룩하다. 특히 증권사들이 홀드 보고서를 제시한 종목 가운데서도 불과 보름 사이에 주가가 15~20%나 뛰어오른 것도 많다. 면피 용리포트는 신뢰만 잃어 홀드 보고서는 비겁하다. 애널리스트가 그저 '보고용'으로 만든 '보고서'인 경우가 많다. 고액연봉에 걸맞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징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상반된 내용의 팩트(fact)를 병렬하거나 의문문으로 보고서를 시작해놓고 '섣부른 예단은 불가'라며 황당한 결말을 내기도 한다. 자신이 일했다는 징표를 만들기 위해 투자자들을 우롱하는 셈이다. 홀드 보고서를 없애라고 간곡히 권유한다. 그게 증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명확한 내용의 매도 또는 매수 보고서는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홀드 보고서는 아니다. 주가전망에 자신이 없다면 "주식에 투자하지 말고 은행예금에 돈을 넣어두라"고 권하는 게 맞다. 요령부득의 면피용 보고서는 애널리스트, 나아가 증권사의 신뢰를 깎아먹을 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