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경색,「대란설 진정」 물거품 우려/환은·산은총재 후임 구도에도 큰 영향검찰이 한보사태와 관련, 장만화 서울은행장의 사임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금융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보사태에서 비켜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장행장이 사정권안으로 들어오자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은행임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가 당장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는 또 최근 사의를 표명한 장명선 외환은행장과 김시형 산업은행총재의 후임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계는 이번 일이 대대적인 공직자 사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점을 중시, 금융권에도 또다시 사정한파가 몰아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정설의 증폭은 금융기관 대출창구의 경색을 초래, 대통령과 부총리가 나서 금융대란설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검찰이 한보관련 은행임직원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대신 부당대출 연루사실을 청와대와 은행감독원 등 관계당국에 통보, 사임시키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소식이 점점 기정사실로 돼 가고 있는 상태.
이는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할 경우 금융권의 대출경색현상을 야기,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자금난을 가중시키게 된다는 경제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 그러나 검찰이 이같은 처리방침을 뒤늦게 결정, 은행장을 두달남짓만에 물러나게 함으로써 은행권에 불신과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비난이 증폭.
금융계 관계자는 『검찰이 한보관련 정치인들에 대한 느슨한 처리로 공격을 받자 힘없는 은행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구태의연한 수법을 다시 쓰는 것 같다』고 맹비난.
한 시중은행 임원은 『걸핏하면 검찰의 수사도마에 오르고 지난 4년간 무려 15명의 행장이 중도에 쫓겨나는 금융계의 현실이 서글프다』고 한탄.
그는 특히 『장행장 사임설을 계기로 금융계 분위기가 더욱 움츠러들고 경색돼 기업에 대한 자금조달기능이 위축될지 모른다』고 경고.
또 다른 임원은 『검찰이 어떤 권한으로 절차에 따라 비상임이사들이 뽑은 행장을 문책퇴임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고 은행장의 인사에 개입하는 검찰의 법적근거를 캐묻기도.
○…은행감독원은 25일 장행장 문제와 관련, 『아직 검찰로부터 수사결과를 통보받지 못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반응.
그러나 한 관계자는 『부당대출 사실이 드러난다면 권고사직 또는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스럽지 않느냐』고 반문, 문책성 중도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
그러나 지난 2월 한보관련 특검에서 장행장에 대해 「주의촉구」라는 경징계를 내린 마당에 이제와서 퇴진을 요구할 명분이 없는게 아니냐는 물음엔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해 현재 은감원의 궁색한 입장을 반영.
○…장행장의 중도퇴임 압력은 최근 청와대가 대대적인 공직자 사정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져 사정한파가 금융계에까지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증폭.
올들어 대기업의 잇단 부도가 금융권간 채권떠넘기기 때문인 측면이 있는데다 사실상 정부의 작품인 「부도방지협약」에 대해 금융권이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자 정부가 기강확립차원에서 사정설을 흘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대두.
금융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부총리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해 주라고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고 검찰은 비리혐의없이 단순히 과다대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은행원에 책임을 물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될지 모르겠다』며 『통치권 누수와 부처간 비협조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비난.
○…한보사태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나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장행장이 「직격탄」을 맞자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은행임원들도 타격을 받을지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
지난 2월 은감원의 한보관련 특감결과 모두 25명의 은행임원이 문책을 받았고 이 가운데 이미 사의를 표명했거나 사임압력을 받고 있는 산업, 외환, 서울은행장을 제외하고 14명이 아직 현직에 있거나 오히려 승진한 상태. 장행장은 당시 가장 수위가 낮은 주의촉구에 그쳤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처리대상」에 포함돼 있는 셈.
특히 오는 30일 후임행장후보를 선출하기로 예정된 외환은행의 경우 유력시되고 있는 두 전무가 모두 한보사태와 연루돼 있어 막판 중대변수가 될 전망. 이에 따라 내부승진보다는 외환은행출신 외부인사가 다시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다.
○…서울은행 직원들은 장행장의 사퇴설이 나돌자 토요일인 24일 하오 늦게까지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는 등 동요하는 분위기가 역력.
서울은행 직원들은 『은행감독원의 한보관련 특별검사에서 당시 행장대행이던 장행장이 행장선임에 장애가 되지 않는 주의촉구를 받아 주총을 거쳐 취임했는데 이제 와서 중도에 물러나라는건 부당한 처사』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특히 서울은행이 지난해 거액의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다 은행장이 취임 석달만에 물러나는 불상사가 겹친다면 은행의 경영정상화도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전망.<금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