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닉슨쇼크, 그 후 40년


지난 1971년 8월15일.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TV에 나와 "미국은 오늘 21세기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며 "전쟁 없이 새로운 경제적 부흥을 이룬다는 우리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선언했다. 닉슨이 말했던 미국의 이상이란 바로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겠다는 불태환 조치였다. 훗날 역사가 닉슨쇼크로 이름 붙인 폭탄선언이었다.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가 안정적일 것이라는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었고 이후 미국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11년 여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뜩이나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터져 나온 미국발 악재는 세계경제를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장기적인 약달러현상 초래 역대로 세계 최강대국은 전쟁이나 낭비벽으로 떠안은 막대한 빚 때문에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도 하나같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패권의 주도권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영국이 미국에 기축통화의 위상을 양보하게 된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서 빌려 쓴 전쟁 부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런 미국도 이제 영국의 쇠퇴기를 닮아가듯 예전의 활력을 잃어버린 채 재정적자의 늪에 빠져 100년이 넘는 패권시대를 서서히 마감하고 있다. 사실 달러화는 이미 닉슨쇼크 때부터 기축통화로서의 운명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단지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버텨냈을 뿐이다. 모두가 하루아침에 달러화를 버릴 때 그 파장이 너무 크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강대국의 흥망'을 저술한 폴 케네디는 미국이 노쇠해지는 이유가 엄청난 군사비용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미국의 합동참모본부 의장 마이클 멀린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중국이나 테러리즘이 아니라 바로 국가채무"라고 역설했다. 미국 재정적자의 구조적 원인이 2001년 9ㆍ11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는 바람에 치솟은 국방비 부담 때문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죽은 오사마 빈 라덴이 10년 만에 미국에 결정타를 안겨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와서 함부로 국방비를 줄일 수도 없다. 전 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다 중국까지 최신 항공모함을 배치하는 등 군비 확충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제국의 정점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미국의 바통을 이어받을 만한 경제력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대안세력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 꺼풀만 들여다 보면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허약한 체질이다. 중국 내부에서 툭하면 미국이 중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음모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불안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위해 협력해야 일각에서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관건은 기축통화 달러의 안락사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20세기가 통화일극(一極)의 시대였다면 21세기에는 통화무극(無極)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는 지금 글로벌 축이 흔들리는 대격변기에 놓였다. 지금 같은 과도기의 시대에 각국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폐쇄적인 정책에만 골몰한다면 세계경제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1970년대 닉슨의 폭탄선언은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약달러 현상을 초래하고 세계경제에도 불황을 몰고 왔다. 지금 우리 앞에도 본격적인 경기 감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이라도 이 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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