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노동시장 10년만의 대변혁-노사상생 해법 찾아라] <하> 전문가들이 말하는 연착률 방안

임금체계에 생산성 반영… 법 적용유예 등 완충장치 마련해야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환노위 노사정소위원회에서 김영배(왼쪽부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직무대행, 신계륜 소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환경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노사정이 더 깊게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연공서열 중심 벗어나 임금과 직무·성과 연계

유연 근무제·재량근로제 등 활용해 속도조절


중기·비정규직도 끌어안는 사회적 합의 필요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 노동계의 굵직한 현안을 다룰 법안의 4월 입법화가 끝내 무산됐지만 여전히 기업을 짓누르는 핵폭탄급 갈등요인이다. 노동환경 변화에 따른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서둘러 처리하다 보면 자칫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고 노사 간 분쟁만 심화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산업 현장에 안착시키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급격한 노동환경 변화를 기업과 산업 현장이 수용할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을 하면서 기업 규모와 여건별로 완충장치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금체계에 생산성 반영해야=전문가들은 노동환경의 변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거 고속성장기에는 젊어서 고생하고 나이 들면 다소 편해지는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가 통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동 환경과 고용 시스템도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분위기 또한 '굵고 짧게' 일하는 문화에서 '가늘고 길게' 일하기를 원하는 쪽으로 바뀜에 따라 연공 중심 임금체계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노동환경팀장은 "지금 불거지고 있는 노동 문제의 원인은 임금 구조가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면서 "현행 연공서열의 임금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면 결국 기업의 부담만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무와 성과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노동계도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현행 임금체계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개편에 앞서 근로자들의 복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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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령자와 장기근속자들이 더 많은 생활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존중하되 임금을 생산성과 연계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예를 들어 숙련된 장기근속자들이 가장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체계가 설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속도 조절하며 완충장치도 필요=전문가들은 근로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법과 제도가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해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갑자기 과거와 단절하자는 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며 "대원칙은 지켜가되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적용유예나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주5일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기업 규모와 여건 등에 따라 단계별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탄력적 유연근무제 도입과 같은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행 중인 '재량근로제'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exemption·배제)'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재량근로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직무에 한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당도 성과를 기초로 책정하는 제도다. 현행법에는 신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직 등 제한된 직종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는 것을 화이트칼라 전 직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도입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도 또 다른 대안으로 꼽았다. 초과근로를 했을 때 수당을 받는 대신 초과근로시간을 적립해뒀다가 경기불황기에 유급휴가로 활용하는 제도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최근 진행 중인 근로조건 개선 논의에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은 배제돼 있다"며 "이들을 함께 끌어안지 않고선 반쪽짜리 합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사 자율합의에 기반한 타협이 해법=궁극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선 노사가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당사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게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며 "이를 위해선 노동단체가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사 대타협의 전제 조건으로 정치권이 아닌 노사 중심의 자율적 합의를 꼽는다. 이 교수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현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각하지 않은 채 규제의 잣대로만 노사관계를 재단하려는 것 같다"며 "노사가 상호신뢰 하에 자율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모든 사안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는 작은 사안별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몰 딜(Small Deal)' 방식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과 자본이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안을 하나로 묶어 일괄 타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노사가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타협안을 만들어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변 실장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작은 성공사례를 하나둘씩 축적하다 보면 이것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지향점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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