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토요 문화산책] 문화의 생존전략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 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화기반지수는 미국의 1/3에 불과해 기본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고, 문화산업지수는 미국의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프랑스의 1/2.3, 일본의 1/4.4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런데 문화창출지수는 미국의 72% 수준으로 일본의 66%보다 높으며 프랑스의 76%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표와 지수 산출의 방법과 기준에 문제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앞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 인프라가 확충될 경우 문화생산력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생산력과 관련해서 요즘 문화 산업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만화, 가요,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연극을 시작하던 70년대만 해도 문화의 주도권은 고급 문화, 순수 문화를 추구하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있었고, 상업성과 단절된 고매한 예술계의 권위가 대중들을 지배했다. 그런데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문화의 지평은 급속하게 변해버렸다. 대중문화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 예술을 모독하는 장사꾼으로 치부하던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요 몇 년 사이에 모든 공연 예술 분야에서 예술경영, 마케팅, 기획, 홍보, 매니지먼트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통용되게 되었고 그 중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대중문화는 순수예술을 위협하는 문화의 주도 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순수예술이 간직하고 있는 진실과 아름다움, 예술적 깊이와 영원한 진리의 추구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중문화, 순수문화, 저급문화, 고급문화의 영역은 모호해지고 구분은 애매해졌다. 순수예술의 허울을 쓴 상업적이며 퇴폐적인 작품도 늘어가고 있으며, 대중 예술 속에도 아름다움과 진실과 인생의 깊이를 추구하는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순수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만으로는 예술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이다. 제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전통문화, 민족문화, 순수문화라 하더라도 과거의 권위와 영광에만 안주해 있다가는 새로운 문화의 도전을 받아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충돌의 시대인 것이다. 문화가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만 머물러 생존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제 모든 문화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갈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 전략의 대상은 바로 그 문화의 생존을 좌우하는 대중이라는 존재이다.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또 하나의 화두는 현대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무서운 미지의 존재 `대중`이다. <김명곤(국립극장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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