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거래 「비밀보호」 안지켜져 실명제 훼손되고 있다

◎사생활·경제활동 침해/DJ비자금 공개는 긴급명령 위반/법원영장 없는 계좌추적 규제를최근 신한국당이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친인척의 예금계좌내역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내용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거래 비밀보호조항에 구멍이 뚫리는 등 금융실명제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됐다. 15일 재계와 금융계는 최근 비자금폭로과정에서 개인의 신용정보가 무차별하게 공개돼 형평과세를 달성한다는 실명제의 근본취지와는 무관하게 실명거래 금융자료가 정치적 술수나 과세자료 등 경제 외의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경제계의 우려가 이번 사태로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금융실명제의 제도적 정착을 고수해야 할 재정경제원마저 정치적 파장을 의식, 함구령이 내려진 가운데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실명제의 양대축 가운데 하나인 거래비밀보호 조항이 사문화될 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93년 8월13일 실명제 실시를 전격 발표하면서 『금융실명제로 인한 사생활 침해나 자유로운 경제활동 위축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입법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긴급명령형태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이유로 『금융실명제 실시가 논의될 때마다 금융시장이 동요되고 경제 안정이 위협받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신한국당이 지난 14일 폭로한 「DJ부정축재자금」은 이같은 긴급명령을 위반하지 않고는 작성할 수 없다는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김총재의 친인척 40명과 측근 1명의 계좌 4백2개에 대한 지난 87년부터 현재까지의 입금액을 이름과 은행계좌번호까지 적시하려면 금융기관 종사자 또는 금융감독당국 등 관계당국의 실명제 위반이 수반되는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한국당의 경우 금융실명제 대상인 금융기관이나 자료를 취합하는 금융감독당국이 아니라 위법 여부를 가리기는 힘들지만 김대통령이 밝힌 실명제 실시의 기본방향을 어겼음이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또 재계는 김총재의 비자금 폭로공방 과정에서 개인의 예금비밀 등이 노출돼 금융실명제가 훼손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명제가 안착되려면 비밀보장이 생명인데 정략적 목적에 따라 예금비밀이 안 지켜지면 실명제가 유명무실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기관과의 거래내역이 샅샅이 노출될 경우 기업 내부정보가 경쟁기업이나 외국기업에 흘러갈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의 예금계좌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번 사건처럼 특정세력이 실정법을 어겨가며 개인의 예금비밀을 캐낼 경우 기업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의관계자도 『금융실명제의 열쇠는 예금주의 비밀보장에 있다』며 『현재 정기국회에 상정된 자금세탁방지법의 법률안검토 때 법원의 영장제시없이는 예금계좌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계는 비밀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실명제는 사실상 실명제가 이니라고 지적, 『실명제 정착을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처벌돼야 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이번 파문은 문민정부 최대의 개혁으로 꼽히던 금융실명제가 종합과세를 통해 형평과세를 달성한다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경제활동과 사생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부작용만 노출한 셈이 돼버렸다.<이의춘·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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