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든든한 정책 도우미 떠오른 '공공기관 변호사'

공공사업 법률지원으로 리스크·시민부담 줄여

9호선 재구조화로 3조 감축 등 서울시 법률지원단 잇단 성과

법무부도 홈닥터제 운영 호응

변협 "변호사 채용 의무화땐 국가·지자체에도 이익 될 것"

박원순(왼쪽 세번째) 시장이 지난 2013년 10월 지하철9호선㈜ 주주들과 변경실시 협약에 서명하고 있다. 박 시장은 9호선 재구조화를 통해 채무를 3조원 가량 감축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내부 변호사를 늘려 민간 계약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 채무를 줄였다고 최근 전했다. /사진제공=서울시

서울 신월동에서 여의도동까지 7.53㎞에 이르는 구간을 지하화하는 서울제물포 터널의 통행료는 애초 1,890원으로 책정됐었다.

이 터널은 영등포에서 인천까지 이어지는 경인고속도로로 인해 양천구 인근 지역이 좌우로 단절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화하는 것으로 이 달 중 설계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 터널의 통행료는 서울시가 지난해 대림산업컨소시엄과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1,846원으로 낮아졌다. 이로써 한해 8억원 가량, 30년 운영 계약기간 전체로 보면 256억원에 이르는 시민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통행료 절감의 1등 공신으로 법률지원단을 꼽았다. 지난해 계약 조항을 면밀히 검토해 민간 컨소시엄에서 제시한 수익률 6.20%를 5.99%까지 끌어내리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서다. 법률지원단은 서울시에서 변호사 채용을 늘려 2013년 발족한 조직으로 올해에는 변호사를 더 늘려 법률지원담당관으로 확대 개편됐다. 정석윤 서울시 법률지원담당관은 "기존처럼 외부에서 법률자문을 받는 형태는 업무 맥락을 배제한 채 의뢰한 부분만 법적 검토가 이뤄진다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내부에 법률 조직을 갖추면 정책 설계 단계부터 계약의 독소 조항 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처럼 선제적으로 변호사를 늘려 뽑았던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단순히 소송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리스크를 줄이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등 기관 본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는 지자체중 대표 사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각종 민간기업과 맺은 민간투자사업 계약을 살피기 위해 취임 이후 내부 변호사 채용을 늘렸다. 2011년 당시 2명에 불과했던 소속 변호사 수는 현재 24명에 이른다.


변호사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민간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송무, 자문 경력을 했던 이들을 비롯해 이랜드와 아주그룹 등 기업체 사내변호사도 있으며 국회의원실이나 경기도교육청, 외교부 등 다른 공공 기관 출신들도 있다. 특히 계약 심사를 하는 법률지원담당관에는 삼일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도 함께 채용해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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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이 최근 한 모임에서 "서울시 재정을 관리하는 데는 계약심사가 굉장히 중요해 취임 이후 변호사를 늘렸고 지하철 9호선을 재구조화해 3조원을 아꼈다"며 변호사 채용 확대에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각 부서가 정책을 추진할 때 법률 지원을 받는 사례도 자연스레 늘었다. 2012년말 이후 서울시 법률지원단이 검토한 계약 심사는 224건, 일반 법률 지원은 3,538건에 이른다. 이를 통해 서울시는 서부간선 지하도로 사업과 신림 경전철 사업 등을 계약할 당시 미래 운임을 낮출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성과도 거뒀다.

법무부도 변호사 수를 늘려 법률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012년 전국 지자체에 변호사를 투입해 지역민들에게 무료 법률상담과 법률 문서 작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홈닥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2년 20명의 변호사를 신규 채용했다.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는 16곳의 40명에 이른다. 법률홈닥터는 지난해 법률지원 건수가 2만8,967건으로 2013년보다 56.3%나 늘어나 호응을 얻고 있다.

경찰청도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 변호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경찰청은 지난해부터 변호사 특채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20명에 이어 올해도 2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경찰청 인재선발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선발한 변호사들을 12월께 전국 경제관련 범죄 수사 현장에 배치했는데 수시로 법적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수사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현장의 소리"라고 전했다.

변호사의 공공기관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곳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다. 대한변협은 공공기관의 변호사 채용이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고, 기관들은 정책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취임한 하창우 대한변협 신임 회장은 아예 공공기관이 반드시 내부 변호사를 채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행정공무원이 맡고 있는 국가소송 관련 수행 업무를 변호사가 담당하도록 하는 법무담당관제와 입법보좌관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 회장은 "미국에서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공무원이 기관의 소송을 수행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일반 행정공무원이 아니라 변호사 자격을 갖춘 공무원이 기관의 소송을 맡아 수행한다면 국가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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