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중국의 공안정국 데자뷔

중국에 공안 정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매년 개최되던 대학생들의 '신해혁명 토론회'가 올해는 불법 집회로 낙인 찍혀 열리지 못하게 됐다. 중국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베이징시 위원회는 지난 9일부터 베이징 대학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 토론회를 바로 전일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도 올해 10월10일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양안 관계 개선을 위해 관련 기념ㆍ학술 활동을 적극 지원ㆍ준비해온 터라 대학생들은 이번 조치에 분노하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가 급진 사상을 가진 학생을 포함해 학업 부진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전면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자유로운 토론이 전제돼야 하는 캠퍼스에 '사상검증과 통제'의 사슬을 설치하겠다는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국의 이 같은 대학 검열은 지난 2월 '중국판 재스민 혁명 집회'가 발생한 후 잇단 인권ㆍ민주 운동가의 구금을 비롯한 대대적인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 등 공안 당국의 잇단 강경조치와 맥을 같이한다. 제1혁명으로 불리는 '신해혁명'은 근대 중국의 창시자 쑨원이 전제왕조를 타도하고 중화민국을 탄생시킨 민주주의 혁명이다. 중국 공산당은 쑨원의 지도이념인 삼민주의(민족ㆍ민주ㆍ민생)를 주제로 이번 대학생 토론회에서 '민주주의' 의제가 부각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대학은 늘 절대 권력에 위협을 안겨주거나 체제 도전의 불씨가 돼 왔다. 50년대 말 마오쩌둥은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며 춘추전국시대를 비유해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설파했다. 하지만 베이징대 등에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나붙자 대대적인 사상 색출, 반동분자 검거 작업에 나선 바 있다. 마오쩌둥은 백가쟁명 구호가 사상검증을 위한 음모(陰謀)였다는 비판이 일자 사회진보를 위한 양모(陽謨)였다고 반박했다. 1978년 개혁ㆍ개방으로 싹트기 시작해 1989년 발생한 천안문 민주화 시위도 대학생 등 지식인이 핵심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또 다른 절대 권력자인 덩샤오핑의 무력 진압으로 결국 유혈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금 중국에 절대 권력자는 없다.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9인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모이는 이른바 '폐문(閉門)회의'는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고 한번 결정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재스민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체제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결정을 내린 듯하다. 미국과 함께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민주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춘 국가로 거듭나려면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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