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에 의해 당선됐다고 대통령이 무한정의 정책 권한을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론의 정치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유럽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주변 국가들을 침범할 때도 여론의 호응이 있기를 기다렸다 참전을 결정했다. 비록 뒤늦은 참전이었지만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에 루스벨트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후대에 루스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의 한명으로 기억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국민과 의회의 존중이었다.
對北 일방적 퍼주기 논란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6자회담이 합의에 이르자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달라고 하는 것을 다 줘도 남는 장사라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 논란에 대해서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마셜플랜의 이름으로 서유럽 국가들에 막대한 액수의 원조를 제공했으나 결국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의 마셜플랜과 한국의 대북 정책이 가지는 구조적 차이점을 간과한 발언으로 참여정부가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의 대북정책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마셜플랜과 현 대북정책이 질적으로 다른 이유를 들자면 우선 당시 서유럽 국가들은 소련권에 대항하는 미국의 우방이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이들의 경상수지 적자를 묵과할 수 없었다. 현재 북한도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의 우방인가 그리고 남북 공동의 적은 누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미국은 통일한국이 미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중국과 동맹관계를 맺는 것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ㆍ법치주의ㆍ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유사시 군사력을 제공할 미국이 중요한지 아니면 같은 동족이라는 혈연적 관계이나 민족통일이라는 추상적 대의명분에서 한발짝만 깊이 들어가면 체제의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는 북한이 중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의 마셜플랜은 뚜렷한 계획이 있었다.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이 요구하는 액수의 반에 미치지 못하는 125억달러의 금액을 제공했고 원조가 제공된 기간도 4년이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의 지원은 차치하고라도 무엇을 위해 어느 정도 액수의 지원을 언제까지 북한에 제공할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북한은 이제 핵무기까지 가지게 됐으므로 앞으로 한국에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북한에 제공된 2조3,000억원(통일부 주장)은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이며 더욱이 지금 한국 정부의 부채는 우려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끝으로 미국은 정치ㆍ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경제적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전후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가 유지되려면 수출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에 제공한 돈은 유럽의 산업시설이 파괴됐던 관계로 결국 미국산 상품을 수입하는 데 사용됐다. 정부가 더 잘 알겠지만 현재 한국의 경제와 고용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경제적 지원은 국내경제의 활성화로 환류되지 않고 있다. 구태여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 하나의 예를 들라면 개성공단이 있을 수 있으나 저임금의 북한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은 한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뺏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정부는 주지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국가정책은 지향하는 목표가 있으며 그 목표는 일반국민의 이익을 위해 설정돼야 한다.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핵 개발을 위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 한반도의 안보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
정부·국민 시각차 우려 수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시각차가 우려할 수준이다. 통일교육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한 설문조사에서 참여정부의 통일정책은 C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설사 그동안의 대북정책의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현 참여정부가 대(對)국민 설득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정책 오류를 시인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경제 지원에 대한 북한의 응답이 개혁개방이나 상생(相生)이 아니라 미사일 및 핵의 개발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각인된 신념은 아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