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8일] 폰 노이만

[오늘의 경제소사/2월8일] 폰 노이만 권홍우 편집위원 1957년 2월8일. 그가 이날 죽지 않고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임종 직전까지도 소련에 수소폭탄을 날리자고 주장했으니까.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폰 노이만(von Neumann) 얘기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휩쓰는 게임이론의 창시자다. 컴퓨터 시대를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190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독일인 부모 아래 태어난 그의 전공은 수학.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23세에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전공인 물리학과 화학에서도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학문이 꽃핀 곳은 프린스턴대학의 고등연구소. 1933년 아인슈타인과 함께 이 연구소의 종신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학과 물리학은 물론 경제학ㆍ컴퓨터공학에도 업적을 남겼다. 경제학자로서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 게임이론과 ‘미니맥스 정리’다. ‘제로섬 게임’이며 ‘죄수의 딜레마’ 등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경제학은 고등학문인 물리학에 비하면 석기시대 학문에 속한다”며 기존의 학설을 무시한 그는 경제를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게임으로 간주했다. 수학과 게임이론을 동원하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외교정책의 모범답안까지 낼 수 있다고 확신한 노이만은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자탄 투하지점으로 정해진 데에도 노이만의 ‘최대의 폭격 효과’ 계산이 한몫 했다. 노이만 게임이론의 극치는 대소 선제 핵공격론. 노이만의 사망으로 폭격도 3차대전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게임이론의 호전성은 한반도를 제물로 노리고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론의 이론적 배경이 바로 게임이론이다. 입력시간 : 2006/02/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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