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금수강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한강이 흐른다. 한반도의 영산 금강산과 태백산에서 발원해 서해에 다다르기까지의 일천이백여리. 맑은 샘물이 실개천으로 흐르고 흘러, 명산 심곡의 실개천들을 안고 또 안아 마침내 ‘큰 강’이 됐다. 그 끝자락 즈음의 ‘한강수 푸른 물’이 그려내는 서울 풍광은 ‘금포도를 물들여낸 듯(染出金葡萄)’ 여전히 넉넉하다.
삼국사기의 ‘온달(溫達)이야기’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로부터 ‘한수’ 혹은 ‘아리수’ 유역은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해상 교통로와 물적 기반 확보의 요충지였다.
중세,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강은 신도(新都) 한성의 임수(臨水)로서 왕조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는가 하면 수많은 문학작품이 서민들의 애환과 정취를 풀어내는 소재로 활용했다. 근세 18세기 후반 들어서는 용산ㆍ마포ㆍ동작ㆍ뚝섬ㆍ송파 등을 중심으로 부상한 경강부상(京江富商)들이 서울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한강은 더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ㆍ25 한국전쟁의 피비린내를 기억하는 시련의 강이기도 하다.
오늘, 한강 변을 따라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달리노라면 새삼 ‘한강의 기적’이 실감난다. 차창으로 투영되는 모습은 괄목상대, 불과 반세기 만에 상전벽해의 신천지를 빚어낸 것 아닌가. 여의도 개발과 영동ㆍ잠실 등의 강남 개발, 그리고 한강종합개발…. 건설인의 한사람으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숨 가쁘게 달려온 이면의 한자락에 우울한 심사 또한 떨칠 수 없으니 흔쾌하지는 못하다. 한강에서 바라보는 스카이라인도 천편일률(千篇一律) 상자꼴이다. 대동소이한 아파트 군락들과 고만고만한 빌딩들이 삼각산도 북한산도 지워버렸다. 한강을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 한강에서 서울을 조망하는 노력에 무심했던 탓이다.
내일도 한강은 ‘한결같이’ 서울을 흐를 것이다. 시련의 강을 건너 기적의 강 저편, 미래의 한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제 어제의 조급증을 과감히 털어내며 먼 안목으로 차분하게 한강의 새로운 가치를 다듬어갈 때이다. 싱그러운 자연이 생동하는 강변과 고유한 특색을 지닌 다리들,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솟아오른 마천루(摩天樓)와 쾌청한 스카이라인이 ‘한강수 푸른 물’과 어우러질진대 한강은 분명 새로운 부가가치로 보답할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수도가 이만한 강을 품고 있던가. 한강은 천혜의 복(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