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대선의 가장 큰 화두는 유권자의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와 염증이다. 그래서 여야와 무소속의 유력 3인의 후보가 모두 나서 판을 뒤바꾸는 수준의 정치 쇄신을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 판도는 과거의 기억을 되밟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의 축이 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후보 간의 단일화 규칙 협상이 협상을 시작한 지 만 하루 만에 안 후보 측의 일방적인 협상 중단 통보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안 후보 측은 지난 14일 “문 후보 측의 겉의 말과 속의 행동이 다르다. 유불리를 따져 안 후보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말고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협상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문 후보 측 인사들이 언론을 통해 ‘안철수 양보론’을 유포하고 안 후보 측 캠프 인사의 새누리당 ‘복무 전력’등을 거론한 것 등이 안 후보 캠프를 자극했으며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다음날 즉각 “불편한 일 있으면 제가 대신 사과 드리고 싶다”고 했고 안 후보는 이에 대해 “깊은 실망을 했다.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사과의 수용보다는 불쾌감을 앞세웠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양측 간의 협상 파행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고 쓴웃음을 짓고 일부에서는 어떻게든 단일화를 이뤄 ‘정권교체’에 나서야 한다며 양측이 한발 물러서 아름다운 결말을 이끌어내기를 호소하고 있다.
정치적 색채에 따라 두 사람의 단일화를 보는 시각은 엇갈릴 수 있다. 또 안 후보 측의 협상 중단 조치에 대해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절묘한 ‘타이밍의 정치’라는 분석과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보는 시각까지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야권 전체적으로는 보면 동력(動力)의 상실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양측 간의 입장차이가 좁혀지면서 사과와 수용 등의 수순을 거쳐 단일화를 이뤄내더라도 단일화 이벤트를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겠다는 ‘단일화 프레임’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로 단일화되더라도 안 후보 측이 제기했던 ‘안철수 양보론’ ‘악의적인 언론플레이’등 어두운 말들이 이후 선거운동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안 후보가 이기더라도 협상을 일방 중단했다는 전력 등에 대해서 역풍을 맞을 것은 자명하다.
당장 여론의 반응은 매번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식상함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현대 정치에서는 단일화의 기억은 여러 번 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야권에서는 권력 나눠 먹기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김대중ㆍ김종필(DJP) 연대에서부터 결과적으로 여권 대선 패인이었던 이회창ㆍ이인제 연대 불발이 있었다.
또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ㆍ정몽준 후보가 지금과 같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뤄냈으나 대선 전날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서 대선판도를 막판까지 혼전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문재인ㆍ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파행도 이들과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국민들의 평가인 것 같다. 또 이들이 기성 정치와 다른 새 정치를 얘기하고 있지만 방식은 여전히 구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번 파행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단일화가 성공하고 이번 대선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두 후보 측의 논란과 잡음의 과정에서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며 그들이 출마선언에서 펼쳤던 처음의 뜻과 다르게 어느새 국민의 소리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