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고슴도치 엄마'의 모정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진솔한 삶과 고뇌의 글이 큰 감동으로 밀려와 가슴을 울릴 때가 있다. 그건 글쓴이의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공명을 불러내기 때문이리라. 의정부교소도의 소인이 찍힌, 자신을 '못 말리는 고슴도치 엄마'라 소개한 한경미(가명)씨의 편지가 나에겐 그랬다. 한씨의 아이들과 어린이재단이 연을 맺은 건 1년 전, 탐스럽게 살이 오른 과일과 곡식으로 인심 넘치고 풍요롭던 추석 즈음이었다. 어린이재단으로 배달된 네 장의 편지는 검은 글자들로 빼곡했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듯 움푹 파인 획(劃)에는 글쓴이 마음의 무게가 느껴졌다. 죄인이지만 모성애는 아름다워 남편과 이혼 후 아이 둘(당시 9살 딸, 7개월의 아들)과 당뇨ㆍ심근경색을 앓는 친정엄마의 생계까지 책임지며 일수받는 일을 하던 한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그 돈을 횡령한 죄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수감생활 3개월째. 교도소에서의 불편한 생활과 잘못에 대한 참회와 반성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지만 어머니를 잘못 만난 죄 없는 아이들 생각을 하면 바윗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다며, 돌봐줄 친인척도 없는 노모와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식 입으로 음식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것이 어머니의 모정이고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단어를 찾고 싶게 하는 존재인 아이들…. 그 모성을 알기에 한씨의 편지는 나에게 애절함을 넘어 모성애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편지를 읽어본 즉시 노모와 아이들이 사는 지역 담당자에게 가정방문을 지시했다. 소외되고 방치돼 있을 아이들과 교도소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지체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실상은 참담했다. 당뇨와 심근경색을 앓는 노모는 거동조차 어려울 만큼 건강이 악화돼 있었고 아이들은 영양결핍에 불안증세까지 보였다. 수소문 끝에 한씨의 전 남편과 연락이 닿았지만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무뚝뚝한 대답만이 수화기에 꽂혔다. 포기하지 않고 이 가정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줄 후원자를 찾아 나섰다. 고맙게도 두 남매의 사연을 접한 많은 후원자들이 정기후원을 약속했다. 이어 아이들의 주거지 인근 복지관과 협력해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자 및 노모의 정신적ㆍ신체적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사회복지사를 배치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씨로부터 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편지에는 '상처와 고통의 순간, 힘을 준 소중한 인연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형(刑)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베풀며 사는 빛과 소금의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뭉클한 각오가 실려 있었다. 굶고 있을 피붙이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에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던 철창 안의 모성이 작은 우표를 달고 전달돼 상실에 빠진 두 아이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고 나아가 어려움을 겪는 더 많은 아이들의 삶에 꽃을 피웠다. 도움받은만큼 사회에 돌려주길 어느덧 1년이 흐르고 또 다른 추석을 준비하며 한씨와 그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많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고 노모의 건강도 이전보다 호전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한씨 또한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 정을 나누는 우리의 명절 추석이 되면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슴에 품을 수 없는 그녀의 모성은 또 한 번 저미겠지만 난 시름하고 있을 가엾은 그 마음에게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보는 둥근 보름달을 그리운 이도 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함께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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