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거품성장의 유혹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출범 이후 성장보다는 분배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하던 참여정부도 성장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투명하고 건전한 경제로 가기 위한 당연한 제도개선인 접대비실명제 조차 타이밍 문제를 놓고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보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지푸라기도 잡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으로 비취진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문제 등을 생각하면 경제성장만큼 다급한 과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 해도 경기를 살리는 일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은 앞으로도 세계경기 회복과 함께 순항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내수와 투자이다. 경기침체의 결정적인 원인이랄 수 있는 내수부진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가계부채에다 370만명을 헤아리는 신용불량자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끝이 안 보이는 신용불량자의 경우 지난 몇 년간 신용카드 남발과 과다한 개인대출이 초래한 업보이다. 신용불량자는 과거 개발연대 은행 돈으로 무분별한 투자를 벌리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이 무더기로 발생한 것과 닮은 데가 있다. 저소득층은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있고 고소득층의 소비는 주로 고가수입품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소비진작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의 투자도 단기간에 활성화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이미 많은 기업들에게 한국은 투자대상지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각인돼버렸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원가는 말할 것도 없고 불안한 노사관계와 각종 규제 등이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들로 지적된다. 더구나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칭다오 지역에 진출한 국내 기업만도 수천개를 헤아릴 정도로 중국진출 열기는 뜨겁다. 정부가 차세대 유망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살리기에 집착하다 보면 인플레적 성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때마침 토지 관련 정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과 신도시 건설, 고속철도 개통 등과 같은 호재 덕분에 국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뛰고 있는 상황에서 농지규제 완화, 신국토구상과 같은 전국토 차원의 땅값을 자극할 수 있는 부동산정책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총선용 선심정책이라는 비난이 없지는 않지만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땅값 상승을 막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유해서는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야와 농지를 전환해 도시용 토지공급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과거 준농림지제도 도입 때 경험했던 대로 부동산은 잘못 건드리면 투기바람부터 불고, 난개발이 판을 치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토지정책도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개발이익 환수제와 토지종합소득세 등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 없이 국세청의 사후적인 투기조사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띄우기만 생각한다면 부동산은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투기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우리 경제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올 위험을 안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로 상징되는 한국병의 근본원인은 비싼 부동산 때문이다. 만약 한 차례 더 투기바람이 불어 부동산이 뛸 경우 당장 임금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고비용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가뜩이나 부진한 기업투자는 더 위축될 것이다. 경제성장이 다급하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통한 거품성장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더디더라도 기술개발과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강화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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