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국내 경제가 '성장 정체의 덫'에 갇힌 가운데 외국인투자 활성화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자국 기업들의 투자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미국 등 선진국들도 외국인투자 유치에 사활을 거는 추세다. 우리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늘어나고는 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일본의 투자 감소로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FDI는 선진기술의 이전은 물론 외화획득, 그리고 고용확대 등의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욱이 최근 일본은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의 주요 국가들까지 외국인투자 확대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FDI를 늘리기 위한 여러 수단을 다시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서울경제신문과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개막하는 '외국인투자 주간(Foreign Investment Week)'에 발맞춰 국내외 외국인투자 전문가들을 초청해 박근혜 정부의 외국인투자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사회=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외국인투자는 왜 중요한가.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실질적으로 외국인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지난 1997~1998년 IMF 위기를 겪었을 때다. 그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차관을 통해 경제를 일으켜왔다. IMF 당시 외국인투자가 외환보유액 증가율의 24%, 고용의 8%, 생산의 15%를 담당해줬다. 그러면서 외국인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다시 발전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분야의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적 개혁을 빨리 해야 한다. 중국은 상하이에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있고 물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중국이 할 수 없는 제도적 개방을 해야 한다.
▲사회=외국인투자가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전년 대비로는 다소 주춤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한중일 관계, 규제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외국인투자 주간에 참석하는 기업들의 동향은 어떤가.
▲한기원 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이번에 산업부와 KOTRA가 주최하는 외국인투자 주간에 참석하는 기업들을 보니 유럽 쪽에서 많이 오고 일본은 줄었다.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한중일 간의 분업화와 상호협력이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유럽은 일본과 중국의 내수시장을 노리고 한국에 공장을 지어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번 외국인투자 주간에는 309개 기업들과 해외 유력 언론들이 참석해 한국의 투자유치 움직임을 살펴볼 것이다.
▲김창규 산업부 투자정책국장=덧붙여 얘기하지만 이번 외국인투자 주간의 큰 화두는 동북아다. 최근에 다국적기업들이 아시아를 새롭게 보고 있다. 아시아를 하나로 보고 있다가 동북아를 동남아와 개별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큰 시장과 일본을 연계하는 포인트로 한국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국적기업의 헤드쿼터나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등을 유치하려는 투자정책을 만들고 있다. 이번 외국인투자 주간을 통해서도 그 계기를 만들려 한다
▲사회=제조업과 서비스업이라는 업종별로 볼 때 외국인투자 트렌드는 어떠한가.
▲한 대표=제조업 45%, 서비스업 55%의 이런 추세로 가고 있다. 제조업은 좀 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일본의 부품소재 기업 등이 올해 투자가 줄었는데 투자를 안 한다기보다는 지난해에 투자가 워낙 많았다. 제조업은 한 사이클이 지나가야 재투자를 할 수 있다. 현재 추세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인데 이것을 어떻게 메워나가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회=국내 제조업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렇다면 외국인투자 유치의 초점을 서비스업에만 맞춰야 하는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제조업과 고성장이 한물갔다는 생각은 잘못된 얘기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많은 제조업이 서비스업과 연관돼 있다. 잠재성장률을 많이 얘기하지만 그것만 따지면 고성장을 할 나라가 없다. 잠재성장률이라는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그 굴레를 깨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보다 높은데 제조업의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23%다. 제조업 고도화를 위한 장기계획을 세우고 GDP의 25%는 무조건 제조업으로 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작은 나라도 제조업에 대한 고도화 투자를 하는데 한국 같은 큰 나라에서 제조업을 경시하면 먹고살 것이 없다. 한국의 강력한 제조업과 연관된 서비스업을 만들어야 한다.
▲김 국장=중요한 지적이다. 이번에 새만금에 일본의 소재기업 T사가 들어오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이유가 한국이 테스트베드로서 매력이 있어서다. 한국의 강한 제조업들과 연계해 자기가 가진 소재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 들어온 유럽의 S사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 독일의 S사나 미국의 G사의 경우 헤드쿼터들이 들어와 있는데 조선ㆍ자동차 등 한국의 강한 산업기반들과 연계해 코스트를 다운시키고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강한 제조업이 외국인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외국 기업들이 동북아를 주목하고 있다면 한국ㆍ중국ㆍ일본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가져가야 하는가.
▲한 대표=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일본은 싫다는 기업들이 많다. 종신고용제도에 빠져 있고 서양 사람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제일 결정적인 것은 모든 게 비싸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베 신조 총리의 비정상적인 경제정책도 걸리는 부분이다. 중국은 사실 전 국토가 자유무역지대다. 임금이 오르고 기업규제도 남아 있지만 전자 등 세계 주요 제조업에는 아직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서비스산업 쪽을 보면 인재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격차도 너무 심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외국 기업 연구개발(R&D센터)은 우리가 중국보다 숫자가 많다. 우리의 인재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것은 외국 기업들의 글로벌센터 유치인데 이게 사실 약하다. 싱가포르는 무려 2,000개가 있다.
▲신 교수=외국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사업이 늘어날 가능성을 본다면 국내 시장의 성장이나 교두보로서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온다. 이 밖에 기업활동을 하기는 얼마나 편한가, 가족과 직원들의 주거 문제를 누가 더 잘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국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많이 보고 들어왔는데 2000년대 들어 한국은 다소 저성장에 빠져 있다. 국내 시장을 보고 들어오는 기업들은 주저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중일 동북아 경제의 통합적 측면에서 좋은 기회를 갖고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를 예로 들면 아주 월등히 뛰어난 것이 아니라 주변국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동남아를 시장으로 보는 다국적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들어오고 스노볼링 효과로 시너지가 생긴다. 한국이 사실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중국과 일본이고 그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사회=박근혜 정부 공약의 핵심이 고용률 70% 달성이다. 외국인투자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전봉걸 서울시립대 교수=외국인 직접투자를 하는 다국적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이 높고 상당히 R&D 집약적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고학력 졸업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졸자가 원하는 직업은 약 1,000만개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공급되는 일자리는 600만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런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외국인투자 유치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청년층 고용률이 상당히 낮은 상황인데 이런 부분에서 다국적기업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기업보다 임금과 생산성이 높다. 그런 기업들이 그린필드 형태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그 자체로도 고용이 창출될 뿐 아니라 서플라이 체인에 의한 간접고용이 생기면서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회=여러 가지 측면에서 외국인투자 유치의 필요성은 충분히 논의되는 것 같다. 하지만 과제로 넘어가면 외국인투자를 늘리자고 하면서 아직도 문제점은 많은 것 같다
▲전 교수=외국 기업을 유치한다고 했을 때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 부분에서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이 벤치마크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현대자동차를 유치할 때 상당히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우리의 인센티브는 다소 규정화돼 있어 협상력을 높이는 데 조금 한계가 있다.
▲한 대표=어느 나라든 인센티브를 안 주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경우 중앙정부ㆍ주정부가 인센티브를 따로 주고 현대자동차를 유치할 때는 길 닦아주고 소방서까지 옆에다 만들어줬다. 하지만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전부가 아니다. 실제 새만금에 이번에 들어오는 일본 기업의 경우 원래는 태국으로 가면 훨씬 효율성이 높은 기업인데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 이유는 한국의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타국 기업들과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는 새만금의 가능성 등을 보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인센티브도 중요하지만 투자의 회색지대를 없애주는 부분이 중요하다. 인허가나 규제 문제를 갖고 소관 부처끼리 서로 책임을 미루는 풍조가 아직 남아 있다. 또 어느 단체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 업종은 풀어주면 안 된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도 존재한다. 우리가 앞으로 서비스업 유치를 확대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문화가 남아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 선임연구위원=장기적인 과제와 단기적인 과제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의 시장규모를 키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단기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노사관계, 사회정서, 국제규범 등은 부수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력하면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다. 영국이 1980년대 외국인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은 대처리즘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단기 과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야 한다. 또 하나는 사업하는 데 있어서의 편의성 문제다. 조세 문제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들은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사회=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이는데 외국인투자 유치 확대를 위한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 국장=외국인투자촉진법은 양질의 좋은 외국인투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조금 풀어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규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되 손자회사의 합작에 대해 특례를 주는 것이다. 일본의 기업과 우리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인데 이번 법 제도 개선은 국내 석유화학 쪽 발전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가 앞으로 그려나가는 동북아 오일허브 프로젝트와 연관된 핵심 사업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은 일본과 우리가 합작을 해서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다. 국민세금이나 인센티브를 안 줘도 되는 사업이고 지주회사 규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큰 규제완화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과연 한국 정부에서 규제완화의 의지가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법을 고치는 것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절차이기 때문에 충분한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