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회계학적 사고를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사회적으로 굵직한 이슈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질 때 수도권 이전에 수십조원이 필요하고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에 몇 조원, 새만금 사업 중단에 몇 조원 등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이 있다고 하면서 공사를 계속 추진 해야 한다거나 중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매체마다 다르고 보도시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도대체 어느 숫자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국민들은 가늠하기 어렵다. 모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함께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언론보도에 정확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원에서부터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과거의 정보를 이용하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그 원망은 일차적으로 언론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서는 매년 오스카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는데 그 점수 집계를 PwC에 의뢰한다. 물론 이 점수집계는 고등수학이거나 복잡한 회계도 아닌, 단순한 산수에 불과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큰 회계법인의 파트너들로 구성된 팀에 의뢰하고 있다. 수상자 결정에 엄정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업무를 과거 70년간 같은 회계법인에 맡김으로써 신뢰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새만금 사업 방조제 33㎞ 공사 중 2.7㎞ 가 남았고 공정률은 97% 수준이라고 한다. 계속 추진할 것이냐 아니면 공사를 포기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설득력 있는 셈 이야기는 별로 없고 환경 단체만 원망하는 분위기다. 대형 국책사업은 모두 착수하기 전에 타당성 검토를 거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당초에 설정한 가정과 제반 여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공사착수 전에 검토됐던 타당성과 예산에 대한 재검토가 매년 이뤄져야 한다. 더구나 사업의 중단 여부가 논의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회계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단순히 셈의 정확성만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들이 제시될 것이고 조건이 달라지면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게 된다. 회계학에서 쓰이는 사고나 기법이 기업 외에서는 많이 이용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나, 이용하면 설득력이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수익과 비용 대응의 원칙, 기회원가적 사고, 대차평균의 원리, 자동검증의 기능, 매몰원가 등등. 세상에는 계량화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그리고 회계의 대상은 대부분 계량화가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계량화가 되지 않는 것도 어떤 가정 아래 계량화해보거나, 각자가 알아서 측정하라는 의미에서 사실을 서술적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천성산의 도롱룡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을 서술적으로 표시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사중단에 일리가 있다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한 원가가 너무나 크다는 정도는 각자 자신의 척도로 판단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역사의 일부를 강조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역사가 혁신(innovation)과 Kaizen(改善)을 통해 진화되고 축적된 것으로 회계장부와 같은 것이다. 물론 이념에 의한 혁명 같은 것도 있었으나 그런 혁명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계량적 사고(計量的 思考)로 이해득실과 능률성을 따져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사회이고 역사다. 실사구시(實事求是)니 실용이니 하는 것들은 대부분 계량대상이 되는 영역이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의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수(數)의 질서라고 했다. 필자가 조건 없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의 계량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자세다. 깊이 있는 분석과 엄밀한 통찰에는 계량적이고 수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인 것이다. 계량적 사고의 엄정성은 합리주의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공자의 첫 관직은 성읍(成邑)이라는 곳에서 회계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전세(田稅) 수납관을 하고 또 다른 지방에서 승전리(乘田吏) 벼슬을 살면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탄탄한 계량적 사고를 바탕으로 실용주의적 사고를 했던 성인이시다. 계량화된 정보를 요약ㆍ집계ㆍ분류ㆍ보고하는 데 회계학적 기법이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음미하는 데는 회계학적 접근법이 탁월하다. 국가적인 사업에 대해 계량적 사고를 함으로써 엄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합리성을 찾고, 회계학적 접근을 통해 사회적인 공동 토론의 장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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