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자구안이 없다니…. SK그룹이 아직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채권단은 정만원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의 기자회견 직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시중은행 SK글로벌 대책반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SK그룹이 아직도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은행권의 지원 없이는 재계 3위의 SK그룹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SK계열사 가운데 무차입 경영을 하는 회사가 전혀 없을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며 “도대체 무슨 배경으로 이렇게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알맹이 없는 기자회견=당초 채권단은 이번 기자회견에 상당한 기대를 가졌다. 채권단의 SK글로벌 대책반 관계자도 지난 20일 “실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구체안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룹차원의 SK글로벌 지원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반의 기대와는 달리 SK측의 발표내용은 기존 내용을 반복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또 정 본부장이 언급한 `SK계열사가 SK글로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매출채권의 출자전환과 부채탕감`부분에 대서도 채권단은 원론적인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 본부장이 이 조치의 시기를 `실사 결과 이후`로 못박는 한편 현재 `검토`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해 구조조정기업의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한다”며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채권단은 이밖에도 정만원 본부장이 `SK글로벌의 청산가치에 대해 각 계열사 별로 따져보고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채권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SK그룹측이 딴 마음을 먹고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황에서 이런 식의 언급은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채권단은 최근 정 본부장 등 정상화추진본부을 이끄는 주도층이 SK글로벌의 정상화보다는 다른 계열사의 생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일련의 소문이 나도는 데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법정관리회사 수준 충당금 적립= SK그룹의 발표에 예상과는 달리 SK글로벌 지원 내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각 시중은행들은 SK글로벌 여신에 대해 법정관리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충당금을 쌓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기존 총 대출금의 10%규모로 쌓기로 했던 충당금을 15%수준으로 높이기로 잠정 결정했다. 한미은행과 국민은행도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충당금 요건인 20%보다 0.01%가 낮은 19.99%의 충당금을 쌓기로 했다. SK글로벌을 사실상의 법정관리기업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채권단이 이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은 최근 SK해운 부실회계 문제와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 등으로 SK사태가 갈수로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실사가 진행중이지만 SK글로벌의 해외채무가 2조원 이상 더 발견될 경우 총 채무액이 10조원을 넘게 돼 사실상 자력 회생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결국 SK글로벌은 SK그룹의 본격적인 지원이 없는 한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충당금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쌓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