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연금개혁]<하>수렁에 빠진 연금… 대책은'정부는 거덜날 게 뻔한 재정을 어떻게든 채워보기 위해 연금개혁을 발표한다. 그러나 퇴직자들은 자신들의 노후가 불안해질 것을 염려해 강하게 반발한다. 근로자들은 가뜩이나 국민부담이 높은 판에 왜 우리가 연금을 내야 하느냐며 거리로 나선다.
정치인들은 연금개혁에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한술 더 떠 연금을 후하게 주겠다고 공언한다.
한 표(標)가 아쉬운 판에 재정이야 거덜이 나든 말든, 후세대의 삶이 구렁텅이에 빠지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이러는 사이 개혁의 기회는 멀어지고 재정은 결국 고갈된다.
국가 재정은 만성적자의 늪으로 빠져들고 경제도 장기침체의 덫에 걸려든다.' 연금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미래의 시나리오다. 어디까지나 가상의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국회의 행보는 오히려 이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선진국과는 정반대
우리보다 인구구조의 고령화와 이에 따른 연금적자의 매를 먼저 맞고 있는 선진국들은 연금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개혁에 손을 대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지난 2000년 개호(介護)보험을 도입해 노인들의 의료비용을 따로 내게 하고 있으며 연금보험료도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30%선으로 높일 계획이다.
스웨덴ㆍ영국 등 유럽국가들도 80년대부터 연금개혁에 칼을 들이대왔다. 칠레 같은 나라는 공적연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영화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썼다.
▶ 그랜드 플랜이 없다
우리나라도 연금재정의 심각성을 의식해 개혁에 손을 대온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연금지급액을 평균소득의 70%에서 60%로 낮춘 것이나 연금수급 연령도 현행 60세에서 2013년부터는 5년에 1세씩 상향 조정하기로 한 계획은 개혁의 굵은 줄기라 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 부담률도 60년 2.3%에서 2000년 8.5%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문제는 언제든 틀어질 수 있을 만큼 개혁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연금개혁이 2년 전으로 퇴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국가적인 그랜드 플랜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복잡한 연금관리체계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2000년의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재정부담을 덜 수 있도록 연금지급기준을 물가연동으로 바꿨으나 그해와 2001년 공무원들의 임금을 매년 10% 이상 올려 퇴직자들의 거센 불만을 자초하고야 말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 내에서 손발이 맞지 않았기 때문.
현재 연금관리는 보건복지부(국민연금), 행정자치부(공무원연금), 교육인적자원부(사학연금), 국방부(군인연금) 등이 각각 따로 맡고 있다. 공무원 임금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조정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개혁의 가닥을 잡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대통령 직속 연금개혁위 고려해볼 만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선진국이 과거에 밟았던 전철을 따라가면 편한 길을 두고 험한 길을,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할 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추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같이 연금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상설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혁을 미적거릴 경우 지탱할 수 없을 게 뻔한 연금재정과 미래의 냉혹한 인구구조상의 변화(고령화)가 정면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