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시장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내 대기업 집단, 즉 재벌의 몸집이 갈수록 비대해 지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20대 그룹의 계열사 수가 678개에서 922개로 36% 늘어났고 자산총액 역시 684조원에서 1,054조원으로 54.2% 증가했다. 재벌의 비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삼성전자ㆍ현대중공업ㆍ현대자동차 등의 주력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수출을 견인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과거의 문어발식 확장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한다는 따가운 비판도 있다. 현 정부는 친기업정책을 표방하면서 오랫동안 재벌들이 요구해왔던 숙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줬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전 정권 때 이미 폐지됐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철폐, 박정희 정부 때 시작된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또한 금산분리정책을 부분적으로 완화해줬으며 세계 경제위기가 터지자 고환율을 묵인내지는 유도해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늘려줬다. 친기업정책을 내세운 이유는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청년실업과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들은 실망하고 있다. 친기업정책의 혜택이 일부에만 흘러가고 대다수 국민들은 소외돼 있다고 여기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수출대기업의 주주들과 정규직 직원들은 배당과 성과급 잔치에 미소를 짓는 반면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협력 중소기업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과 부당한 납품단가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반소비자들도 휘발유를 비롯한 생필품 가격급등을 놓고 대기업들이 원가압박을 소비자에게 전적으로 전가한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의 3세들이 주력계열사들의 경영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다른 그룹에서도 3세대 경영승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그룹에서는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라는 신종 편법승계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ㆍ중소기업상생시책과 일감몰아주기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선정 등은 재벌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반시장적이고 인기영합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은 사태를 해결하는 진정한 길이 아니다. 우리는 바람직한 시장형태를 규정할 때 생태계라는 말을 흔히 쓴다. 시장 생태계의 본질은 다양성과 균형이다. 이는 자연생태계가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할 때만 지속가능하다는 원리와 같다. 우리는 흔히 자연생태계를 놓고 강자가 약자를 포획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묘사하지만 자연은 그냥 두어도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고 먹이사슬의 균형이 유지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이다.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경제 생태계는 그냥 두면 독점과 불공정이 판을 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무한한 부를 창조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실종되고 끝내는 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마저도 위협 받게 된다. 대기업 계열사들이 유통ㆍ음식업ㆍ광고ㆍ건설ㆍ상조업 등으로 진출하면 할수록 독립적인 창업의 기회는 입지가 좁아지고 시장 생태계는 교란된다. 대기업이 손을 대야 발전한다는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 아닌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경제력집중억제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운영하면서 그 제도들의 부작용을 익히 경험했기 때문에 이를 폐지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일부 대기업들의 행태가 지속되면 그 제도들이 다시 부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 부활을 막는 것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율이 없는 곳에 타율의 올가미가 온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