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탱크주의 배순훈 관장의 虛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께서 '서울관의 큐레이터를 외국에서 데려오라'고 지시했는데 나도 그럴 생각이 있어서 채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 23일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후 배 관장은 "서울관에 외국인 큐레이터를 채용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 지금 몇 사람을 염두에 두고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도 언론에 밝혔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미술계가 술렁였다. 한국미술을 연구하는 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외국인 큐레이터를 기용하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격동 옛 기무사터에 세우는 서울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이자 한국의 명소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포부는 공감할 만하지만 외국인 큐레이터가 미술관의 세계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다. 국제 전시 교류 차원에서 외국인 큐레이터 기용은 가능하겠지만 학예실을 내주는 것은 조직 적응이나 언어적 소통 면에서 불안한 점이 하나둘 아니다. 용인 소재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 2009년 학예연구실장으로 토비아스 버거를 채용해 2년 계약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함께 일했다. 하지만 버거 실장은 독일에서 활동했던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깊이 이해한 인물이라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었던 덕분이다. 이날 배관장은 덧붙여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연출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고은 시인의 '만인보'를 주제로 했는데 내가 이해하는 만인보와는 다른 것 같다"는 부정적 시각을 비췄다가 곧 "내가 이해하는 만인보와는 다르지만 외국인 기획자에 의해 해석된 전시 중 잘된 케이스"라고 급히 해명하는 등 발언이 갈팡질팡했다. 미술계의 술렁거림 때문인지 국립현대미술관은 며칠 후 말을 바꿨다. 미술관 측은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본부(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 지시가 내려온 것도 아니어서 아직 외국인 큐레이터 기용에 대해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자 '탱크주의'로 유명한 배 관장이 기대 속에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부임한 지 3년째다. 임기 중 업적보다 허언의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아 유감이다. 기술과 예술은 같지 않지만 또 그리 다르지도 않을진대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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