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서 대기업까지 "CP발행 포기"[6.15선언이후] 기업 자금난 실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삼성, SK, LG, 롯데 정도만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을 뿐 나머지 기업들은 회사채 신규 발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돈줄이 막히면서 자금조달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업들은 정부 의지와 무관하게 회사채, 기업어음(CP) 시장이 단기간에 기능을 회복하기 힘들다고 판단, 아예 「안 쓰고 안 벌겠다」는 식의 자금집행 계획을 세우는 형편이다.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는 줄잡아 28조원. 이 가운데 신용등급 A이상의 최우량 기업과 워크아웃, 부도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을 제외하면 13조5,0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삼성, SK, LG, 롯데 등 자금 여유가 풍부한 일부 초우량 기업들을 제외할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은 현재 금융기관으로부터 만기 채권의 100% 상환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 위험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특정 기업들의 경우는 기업의 재무구조와 무관하게 금융권의 불신을 받는 상황이다.
◇대기업도 기업어음발행이 안된다= 30대그룹인 A사는 최근 5,000만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조달하려 했으나 포기했다.
이달안에 돌아오는 만기 채권 3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금융기관과 접촉했으나 『일단 좀 더 지켜보자』는 반응만 확인했다.
이 회사 자금 담당자는 『다행스럽게도 지난 97~98년 기업의 사정이 최악이어서 채권을 발행하지 못했던 것이 현재 자금부담을 비교적 적은 요인』이라며 『하지만 투자 재원 등을 조성하려던 당초 계획은 일단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A사가 외자 유치를 포기한 것은 국내 자금시장이 한치 앞을 전망하기 힘들 정도로 불투명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B사는 최근 외자를 유치했으나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 회사 자금 담당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위한 회사의 노력을 알려주고 싶지만 시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준과 워낙 괴리가 커 발표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한 때 한국의 신용보다 높게 평가받았던 롯데의 경우 최근 기업어음을 발행하려다 실패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9월에 만기가 되는 2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기업어음 발행을 검토했으나 인수 기관이 나서지 않아 포기했다』며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는 신용평가가 A3인 최우량 기업도 CP발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3,000억원 가량의 만기 채권을 상환해야 하는 C사는 외자유치, 분사, 계열사 지분 매각, 자산 매각 등 할 수 있는 모든 자구계획을 마련해 놓고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D사 관계자는 『만기 채권에 대해 일단 100% 상환을 무조건 요구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50%가량은 상환하고 나머지는 차환발행을 통해 메워가고 있으나 현재와 같은 상환압박이 지속된다면 최우량 기업이라해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더 힘들어=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돈줄이 막히면서 계획중인 설비증설자금은 물론 운영자금 조달에도 차질을 빚는 등 또 다시 자금한파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A사는 최근들어 70억원을 투자해 연말까지 끝내려던 전기부품 생산라인 증설을 내년 상반기로 연기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연초 세워놓았던 자금수급계획이 한두달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달까지 32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인수하겠다는 곳이 없어 실현자체가 불투명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요즘 일부 대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가뜩이나 위축돼 있던 자금줄이 더욱 경색되고 있다』며 『라인 증설을 포기할 경우 이미 투자된 20여억원까지 날라가기 때문에 중단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섬유업체인 B사도 올초 사업영역을 인터넷과 백화점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전담부서까지 설치했지만 은행으로부터 돈빌리기가 여의치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K사장은 『얼마전 자금당담이사가 은행에 5억원 가량의 대출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갔으나 지금은 조건이 맞지 않아 빌려줄 수 없고 한두달이 지난후 다시 오라는 말만 들었다』며 『현재 인터넷사업을 위해 서버등 일부 장비까지 도입했는데 상황이 갑자기 이상하게 돌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산업부·성장기업부
입력시간 2000/06/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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