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헛심만 쓴 공정위

대기업 부과 과징금 87% 법원서 취소

"증거 등 조사 부실 탓" 지적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87%에 이르는 금액이 지난해 법원 판결을 통해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승소율은 공정위가 높았지만 부과된 과징금 규모가 큰 대형사건일수록 공정위 패소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5일 서울고법 등에 따르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낸 대기업 중 지난해 1심 판결을 선고받은 곳은 21곳이며 이 가운데 14곳은 공정위에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의 승소율이 60% 후반대에 이르는 셈이다.

그러나 금액으로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정위를 상대로 승소한 7개 회사가 취소받은 과징금은 2,721억원으로 지난해 법원에서 다뤄진 총 과징금(3,131억원)의 86.9%에 이른다.


일례로 공정위가 "주유소들이 거래처를 자유롭게 옮기지 못하도록 합의했다"며 정유사에 과징금 수천억원을 부과했지만 법원은 "담합으로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SK이노베이션과 계열사에 대한 1,356억원과 현대오일뱅크에 대한 754억원의 과징금이 각각 전액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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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 담합을 빌미로 생명보험사에 부과한 과징금 수백억원도 법원 판결로 대부분 취소됐다. 따라서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은 각각 486억원과 43억원의 과징금 부담을 덜게 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원인이 '공정위의 부실한 조사 탓'이라고 분석했다. 엄청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에 비해 증거 확보 등에서는 치밀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기업의 특정 불공정 행위로 경제 전반이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공정위 측이 명확하게 입증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좀 더 면밀하고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대형 로펌으로 대거 흘러들어간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공정위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대형 로펌의 자문위원으로 영입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업무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간 공정위는 예전의 치밀함이 사라진 반면 공정위를 상대하는 대형 로펌의 논리는 더욱 탄탄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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