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100년 맞은 연준 어디로] <중> 버냉키의 유산

옐런 출구전략에 '헬리콥터 벤' 역사적 평가 달렸다<br>금융위기에 창의적 정책 총동원<br>'미국 경제 구원' 찬사 받지만 초저금리·양적완화 약발 떨어져<br>경기 재침체땐 오명 남길수도

벤 버냉키 연준 의장

재닛 옐런 차기 의장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일보 직전으로 몰리면서 18개월 동안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특히 다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보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리처드 피셔 댈러스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최근 영국 BBC방송에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이처럼 버냉키 의장은 2006년 2월 연준 수장에 오른 뒤 지난 8년의 임기 동안 숱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대공황 전문가인 그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가 터진 뒤 월가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가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공화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 여파로 2010년 1월 말 미 상원의 연임안 투표에서 버냉키 의장은 불과 70표를 얻는 데 그쳤다. 연준 의장 역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천문학적 규모의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등 경제학 교과서 한쪽에 숨어있던 각종 비전통적이고 창의적인 대책을 꺼내 위기극복을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버냉키 의장이 연준 창립 100주년에 맞춰 내년 1월 말 물러나면서 임기 중 업적에 대한 평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호의적인 평가가 대다수다. 지난달 로이터가 이코노미스트 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버냉키 의장은 10점 만점에 8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과거 업적은 지표에서 가장 잘 확인된다. 미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에서 이달 초 7%로 떨어졌고 미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009년 3월 666.79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3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1930년대와 같은 2차 대공황 엄습이나 신용붕괴의 공포가 사라졌고 미 경제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재정투입 여력이 바닥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기극복의 공로는 상당 부분 버냉키 의장의 몫이라는 평가가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양적완화 정책이 마법을 불러오지는 않았지만 버냉키 의장은 내년 1월 말 고개를 꼿꼿이 들고 당당하게 퇴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버냉키 의장은 정례 기자회견, 실업률·인플레이션 목표치 제시, 포워드가이던스(선제적 안내) 등을 통해 시장과의 소통에도 기여했다. 또 19명이나 되는 연준 위원들의 의견을 모두 경청하면서도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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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금융위기를 부른 월가 규제완화나 주택시장 버블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점은 버냉키 의장에게도 뼈아픈 비판이다. 나로프이코노믹어드바이저스의 조얼 나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버냉키 의장은 금융위기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한 위대한 위기관리자"라고 비꼰 뒤 "주택 및 금융시장 붕괴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양적완화 조치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미 경제가 또다시 침체기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연설에서 "단기금리가 제로 수준인 상황에서 추가 조치를 쓰기가 쉽지 않다"며 "장기침체가 뉴노멀(새로운 정상 상태)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화정책 정상화 시기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매파는 연준의 자산매입 규모가 4조달러에 이르면서 자산버블 붕괴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비둘기파는 연준이 공격적인 부양조치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미 경제가 다시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버냉키 의장에 대한 평가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양적완화 조치나 포워드가이던스를 함께 이끈 재닛 옐런 차기 의장이 무리 없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경우 버냉키 의장도 역대 최고 수장의 반열에 오르겠지만 반대일 경우 오명만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경우 2005년 로이터 설문조사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됐지만 지금은 거품을 일으켜 금융위기를 부른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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