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채권단에 최후통첩을 던지면서 혼란스러웠던 채권단 내 기류는 조속할 시일 내에 두 축으로 확실히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과정에서 수평을 유지했던 시소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금호산업을 다시 공개 매각으로 돌렸을 때 흥행과 가격 모두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연내 매각'을 선택하는 채권 금융사가 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 중 7,935억원을 선택하면 금호산업은 사실상 제3자 공개매각 대상이 된다. 채권단이 박 회장의 자금력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박 회장의 제안가(6,503억원) 보다 1,432억원 높은 제시가를 던지는 것은 제2차 공개매각이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이기 때문이다. 호반건설이 유일하게 참여했던 지난 4월 1차 공개매각 당시에는 금호의 우선매수청구권이 유효했기 때문에 다른 매수자들이 공개입찰에 들어오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금호카드가 사라졌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가격을 선택해 매각 작업이 결국 장기화되고 매수자들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채권단의 욕심 탓에 매각 시기를 놓쳤다는 비난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매각이 지연돼 금호산업의 기업가치가 더 떨어질 경우 채권단은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채권 금융들이 연내 매각 쪽으로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27일 채권단 회의 때 나온 "박 회장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연내에 매각하자"는 일부 채권 금융사들의 주장은 다시 공개 매각을 추진하더라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럴 경우 박 회장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론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 공개매각이 시작된 2월 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컨소시엄, IMM PE, 자베즈파트너스 등 네 곳의 FI는 결국 본입찰에 응찰하지 않는 등 예상 보다 저조한 흥행 실적을 기록했다. 제2차 공개매각에 나선다고 해도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금호산업의 주력사업인 항공업(금호아시아나) 전망이 밝지 않은데다 중국발 세계경제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어 이번에 매각 타이밍을 실기할 경우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금호산업의 실적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금호산업은 2·4분기 14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4·4분기 113억원을 올렸으나 올 1·4분기 8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2·4분기에는 적자폭이 더욱 확대됐다. 최근 2년 중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금호산업의 핵심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도 1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은 1조3,336억원으로 전년 대비 5%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분기 만에 다시 61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단거리 노선 매출 비중이 50%가 넘어 저가항공 공세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채권단 관계자는 "올 초 공개매각 때와 달라진 것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와 저가 항공사 공세로 항공업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 외에는 없다"면서 "무턱대고 다시 공개매각을 추진하면 매수희망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말했다.
다른 채권 금융사의 한 관계자도 "다시 공개매각으로 돌아섰을 때 매수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매각이 지연돼 기업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에 꼭 매각해야 하는 이유"라면서 "연내 매각을 목표로 산은과 박 회장 측이 협상에 나서는 것이 전체 채권단 입장에서도 결국은 손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이 '연내 매각'으로 방향을 잡게 되면 산은은 적당한 수준으로 낮춘 가격을 들고 박 회장 측과 신속한 매각을 목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한편 최후통첩을 날린 산은은 이번 의견 수렴을 통해 채권단의 선택이 한쪽으로 집중되기를 희망하는 눈치다. 현재 7,935억원과 연내 매각으로 팽팽히 맞서는 채권단 내 의견이 이번에도 이어지면 안건 가결 가능성은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산은 관계자는 "두 가지 선택권을 제시했지만 압도적인 몰표가 아니라 박빙으로 나오면 타결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의미가 없다"면서 "어느 쪽이든 신속하게 가결돼 후속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