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에게 돈을 빌리기는커녕 전기요금 한 번 밀려본 적 없는 성실남 A씨. 몇 푼 안 되는 봉급을 착실하게 모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온 그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련이 닥쳤다. 큰 병에 걸린 부모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가 몇 개월 갚지 못하면서 신용등급이 확 떨어져버린 것. 한순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그는 갈수록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기존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렸다.
앞으로는 A씨처럼 몇 개월 연체만으로 신용등급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국민연금ㆍ건강보험료ㆍ전기요금ㆍ수도세 등 공공요금 납부실적을 개인신용평가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주 발표 예정인 '서민금융 기반강화 대책'에 이같은 내용의 개인신용평가 개선 방안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공공요금 납부실적이 개인신용평가에 반영되면 평소 성실하게 공공요금을 납부해온 금융소비자는 신용등급에 가점을 받는다. 금융위는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ㆍ건강보험관리공단ㆍ한국전력 등과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도용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본인의 동의를 얻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서태종 금융위 본부 국장은 "기존 개인신용평가는 대출 연체 등 부정적인 정보만을 사용해 신용등급이 너무 낮게 산출되는 경향이 있다"며 "공공요금을 밀리지 않고 납부해온 사람은 빚을 갚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신용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대출금 상환실적, 신용카드 대금 납부실적 등을 신용평가 자료로 공개해 과거 성실하게 대출금을 갚은 사람도 신용평가시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에는 대부업체 최고금리 인하,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 햇살론 등 서민금융 강화 방안도 포함된다. 금융위는 현행 8년인 개인 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 기간을 10년으로 늘려 부채탕감 부담을 줄여주고 일정기간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에게 지원하는 '재활자금'을 증액할 계획이다. 햇살론ㆍ미소금융ㆍ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 3총사의 대출요건도 완화된다. 7등급 이하 저신용자만 이용할 수 있는 미소금융 대출 자격이 확대되고 햇살론도 소득인정 범위에 비급여소득 등을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대출을 늘려줄 계획이다. 대부업 최고금리는 당초 계획대로 현행 44%에서 39%로 낮아진다.
한편 금융위는 이번 대책을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이라는 명칭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나 고심 끝에 '서민금융 기반강화 대책'으로 바꿨다. 우리 경제가 가계부채로 시름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대출 조장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을 우려해서다.
서 국장은 "이번 서민금융대책은 추후 발표될 가계부채 억제책으로 서민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출 확대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금융안정망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