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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12월11일]안티팬 부르는 한은

다음 보기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①뒷북친다 ②늑장대응 ③소극적이다 ④고집세다. 정답은 한국은행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약간만 관심 가져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요새 한은을 일컬을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수식어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에도 선제적이고 공격적이지 못한 한은에 대해 실망이 크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한 금융통화위원마저 사석에서 한은에 대해 ‘굼뜨고 방어적이다’고 토로할 정도니 한은이 얼마나 비우호적인지 짐작 가능하다. 굳이 이번 건이 아니더라도 한은은 태생적으로 우호 세력이 거의 없다. 최종 대부자로서 정책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유동성 조절과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니 경제주체 누구 하나 좋아할 리 만무하다. ‘친한은파’는 개혁성향의 몇몇 학자와 한은의 입장을 비교적 균형 있게 전달하려는 한은 출입기자들 정도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신감’이 싹트며 이들마저 친한파에서 이탈하려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8일 벌어진 ‘2009 경제전망’ 발표 연기 소동이 단적인 예다. 당초 한은은 9일 이 자료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이는 이미 보도계획에도 잡혀 있는 공식 일정이어서 관련 기사도 상당수 나왔다. 하지만 한은은 발표 하루 전날 느닷없이 일정을 연기했다. 이틀 후인 11일 있을 금통위보다 먼저 성장 전망치가 나갈 경우 금리결정에 부담이 된다는 게 한은 측의 연기 이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금통위에 앞서 경제성장을 전망했던 게 관례였고 성장률에 따른 시장의 반응도 압력보다는 여론동향과 소통과정으로 참고할 수 있으며 특히 발표 하루 전날 금통위 부담이 갑자기 생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설령 시장에 혼선이 생기더라도 금통위가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임을 고려하면 발표 연기는 석연치 않아 보인다. 결국 한은이 금통위의 편의나 말 못할 사정 때문에 시장과의 약속을 깼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로 기자단과의 신뢰에 금이 간 것도 물론이다. 이에 앞서 10월 말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관련 보도 때 한은의 책임 당국자들이 보안을 이유로 거짓말로 취재를 방해해 감정의 골이 패여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견제와 균형을 업으로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소신과 원칙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특히나 시장과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중앙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안티팬으로 둘러싸여 힘들어 하는 한은이 우호세력마저 등지며 고립무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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