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징허게' 아름다워 슬픔도 유배된 땅 "진도"

'限'의 고장 珍島<br>향토회관 매주 土 무료 소리 공연<br>무형문화재 60% 이상 진도 출신<br>오밀조밀 군도… 설화는 음담패설 방불<br>'신비의 바닷길' 기네스 북 오르기도

운림산방의 고즈넉한 풍경

해무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조도

연 400만명이 찾는 진도 명물 '신비의 바닷길'

목포역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다다른 전남 진도 땅. 버스가 진도대교에 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진양조의 곡조가 아련히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진모리에서 휘몰이로 몰아치는 경쾌한 장구 소리가 나는 듯 하다. 소리의 고장 진도에 왔으니 이 같은 환청이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한데 흥겨운 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진도군청 문화해설사 허상무 씨의 설명을 들으니 그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진도는 예부터 옥천, 옥주라 불릴 정도로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해 식량이 풍부했다. 그러다 보니 외침이 많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려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다. 여러분이 지나고 있는 진도대교의 바로 밑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12척 군함이 왜군의 전함 133척을 섬멸시켜 전라도 해안을 되찾은 명량대첩지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갑작스레 유속이 빨라지는 울돌목(소리내어 울며 도는 길목)의 지형적 특징을 이용,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실제로 다리 밑을 내려다 보니 전체 유속은 잔잔하지만 세 군데에서 시속 40㎞ 이상으로 물살이 빨라지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빨라지는 유속에 왜군은 키를 돌릴 수 없어 혼비백산했고 그 결과 전세가 역전됐다. 결국 휘몰이 장단은 빨라지는 유속과 함께 물살에 솎아 들어가는 왜군 전함을 빗댄 소리였을 지도 모른다. ◇진도에선 글과 노래, 그림 자랑을 말라 진도는 ‘한(恨)의 고장’이다. 지나가는 진도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걸쭉한 육자배기를 뽑아낼 수 있는 것 역시 어려서부터 한을 가슴에 품었던 탓이다. 삼별초 대몽항쟁을 겪으면서 진도 남성들은 몽고에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했고 오랜 시간 진도에는 여자와 아이들만 남아 삶을 꾸려야 했다. 남편과 아버지, 아들을 잃은 여자들의 한은 소리로 재생산 됐고 소리의 피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진도 여인들의 한의 소리는 애절하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걸쭉한 농을 보탠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경쾌한 장구소리 섞인 것이기도 하다. 허 씨는 “당시 남자들이 없어 여자들이 상여를 멨는데 여자들의 곡소리는 사물놀이와 함께 어우러져 어깨춤이 날 정도로 신명 났지만 가슴으로 통곡을 하는 소리였다”며 “진도 소리의 특징이 바로 슬픔은 슬픔이로되 겉으로 통곡하지 않는 슬픔”이라고 설명했다. 진도의 소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도시 사람도 후렴구 정도는 따라 부를 수 있는 진도아리랑부터 씻김굿, 남도들노래 외에 북춤, 사물놀이 공연도 볼 수 있다. 진도 사람들의 자랑은 노래 뿐만이 아니다. 시, 서, 화에 고루 능해 오늘날에도 무형문화재의 60%이상이 진도 출신이다. 이런 까닭에 예부터 사람들은 “진도에선 글과 노래, 그림 자랑을 말라”고 했다. 이 같은 문화적 기반은 유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중종과 선조 때 문신으로 19년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소재 노수신(1515~1590) 선생은 1,023수의 한시를 지으며 주민들에게 시문을 가르쳤고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 선생은 낙향 후 첨찰산 자락에 화실(운림산방)을 짓고 남은 여생을 보내며 남화를 발전시켰다. 현재까지도 그의 후손들은 소치 선생이 피워낸 지성의 묵향(墨香)을 이어가고 있다. 전도연ㆍ배용준 주연의 영화 ‘스캔들’의 촬영지이기도 한 운림산방(입장료 대인 2,000원)은 넓은 연못과 수양버들, 붉은 자목련과 홍도화(수양 홍도)가 한 폭의 경치를 이루는 곳이다. 아침 저녁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와 산방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운림(雲林ㆍ구름이 숲을 이뤘다)이라 지었다고 전해지니 안개가 필 무렵 찾는 것도 좋다. ◇섬 속의 섬을 보는 재미도 진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바로 군도 유람이다. 군도 유람 중에는 18세 이상 성인 조차 듣기 민망한 농익은 설명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둬야 한다. 유람에 함께 나선 진도군청 문화해설사 허상무 씨의 설명에는 암수가 함께 뒹굴다 만들어진 섬에 대한 얘기가 가득했다. 진도 사람 특유의 솔직한 성문화가 이 같은 전설을 만들어낸 듯하다. 남자의 신체 일부로 만들어졌다는 주지도(손가락섬)와 여자의 신체 일부로 만들어졌다는 혈도(공도) 얘기는 그나마 점잖은 편이니 다른 이야기들의 농밀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쉬미항(061-544-0075)에서 상시 운행하는 관광유람선에 오르면 75분간 저도-작도도-광대도(사자섬)-혈도-주지도-양덕도-방고도를 돌아볼 수 있다. 굳이 배에 오르지 않더라도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남도 최고의 낙조라는 세방낙조와 함께 이들 섬을 조망할 수 있다. 이밖에 전망대(420m)에서 청자색 바다와 군도, 해무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조도는 팽목항(061-544-5353)에서 출발하는 조도여객(35인승)을 타고 갈 수 있다. 조도여객은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페리로 자동차(승용차 기준) 한 대와 운전자 1인 운임이 1만4,000원이며 추가 1인당 3,000원이다. ◇신비의 바닷길 올해 세계기록으로 연중 400만 명이 찾는다는 진도의 명물 ‘신비의 바닷길’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특히 세계 최장 바닷길과 바닷길에 오른 최다 인원 부문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할 계획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진도군은 5월 5~7일 고군면 회동리 일원에서 열리는 제31회 신비의 바닷길 축제에서 바닷길 길이(2.8㎞)와 한꺼번에 바닷길에 오른 사람 수(약 7,000~1만명)를 측정할 예정이다. 신비의 바닷길은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2.8㎞ 바다가 폭 40~60m로 갈라지는 것으로 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가 이곳을 방문한 후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바닷물은 하루 두 차례씩 들고 빠지는데 바닷길이 완전히 드러나는 1시간 동안 섬과 섬 사이를 걸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군청에 문의해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길 옆으로 수벽이 만들어지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 같은 기적은 성경 속 내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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