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2일] 주전소


‘돈의 주조는 나라의 큰 일임에도 규격대로 만들지 못하고 협잡도 많아 물건 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관리를 처벌하고 주전소를 없애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1889년 3월22일, 의정부(議政府)가 고종에게 올린 건의의 골자다. 고종은 바로 주전소를 없앴다. 조선은 왜 돈을 찍어내는 주전소(鑄錢所)를 혁파했을까. 부정부패와 물가고 탓이다. 당시 주전소에서 발행하던 화폐는 당오전(當五錢). 동(銅)의 함량이 낮아 액면가치가 실질가치보다 2~3배나 높은 악화(惡貨)였다. 조정이 1883년 당오전을 발행한 이유는 화폐주조 차익을 노렸기 때문. 돈의 순도가 낮아지니 당연히 가격이 뛰었다. 1884년 24푼이던 쌀 한되 가격이 1886년에는 246푼으로 10배 이상 올랐다. 당오전으로 배를 불린 것은 조정이 아니라 외척 민씨 일족. 국영뿐 아니라 사설 주전소를 세워 돈을 긁어모았다. 조악한 품질로 악명 높던 평양주전소를 감독했던 평안감사 민병석은 조선의 갑부로 떠올랐다. 위조에는 일본인들도 합세해 조선의 화폐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악화 유통으로 이전에 발행된 양화는 자취를 감췄다. ‘그레셤의 효과’가 일어난 셈이다. 주전소 폐지 이후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조정 스스로 살림이 궁해지면 임시 주전소를 세워 돈을 만들어 썼다. 문란해진 통화제도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것은 일본 화폐. 막부시대에 통용되던 은화에서 불태환지폐까지 이르기까지 일본 돈이 조선의 경제를 갉아먹었다. 대한제국으로 옷을 갈아입은 조선은 뒤늦게 신식 화폐와 금본위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마저 식민지 금융으로의 종속을 부채질했을 뿐이다. 무너진 화폐ㆍ통화제도와 일본에 의한 화폐침략사의 끝자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망국(亡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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