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삶의 질' 높이기

몇 해 전 영화제목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학교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애들을 몰아부치는 어른들의 극성에 대한 불만과 비아냥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진실도 담겨 있다. 급속한 기술혁신과 소득향상에 따라 직업이 다양화되면서 학교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나오면 성공적인 삶이 보장되던 전통적인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최근 골프ㆍ야구 등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는 세계적인 스타들의 경우만 해도 전통적인 의미의 학교 성적과 그들이 이룩한 성과간에 큰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행복과 같은 주관적인 느낌이나 판단의 문제를 성적과 같은 계량적인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득올라도 만족도는 뒷걸음 ‘성적이 좋으면 행복할 것이다’와 같은 류의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가령 ‘경제력이 커지면 삶의 질도 올라갈 것이다’는 고정관념도 비슷한 예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1위,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1만6,000달러를 넘어섰다. 2~3년 안에 2만달러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상식으로는 삶의 질도 동시에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삶의 질에 있어서 한국은 26개 회원국 중에서 하위를 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규모로나 1인당 소득으로나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보다 삶의 질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분히 주관적인 가치가 반영되는 삶의 질을 평가하고 측정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논란이 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경제력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삶의 질이 낮은 중요한 원인으로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공교육은 뒷전인 채 사교육에 막대한 물적ㆍ인적 자원을 쏟아붓는 비뚤어진 교육시스템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우선 입시준비 위주의 사교육은 아무리 많은 자원을 쏟아넣는다 해도 학생의 지적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낭비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안전은 높이지 못하면서 소중한 자원만 축내는 군비경쟁과 같은 것이다. 자식이 궁극적으로 낭비에 불과한 사교육 경쟁에서 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막대한 학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설사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높아지더라도 삶의 질이 높아지기 어렵다. 특히 그런 낭비적인 일에 들어가는 인적ㆍ물적 자원의 증가율이 소득증가율보다 높은 경우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되레 뒷걸음질치는 아이러니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사회구조 개선 시급 둘러보면 사교육 말고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널려 있다. 높은 거래비용을 초래하는 저신뢰사회,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는 정치,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투쟁을 우선하고 합리성보다는 감정과 정서가 앞서는 풍토 역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이다. 같은 소득수준이라도 쓸데없는 낭비가 적은 사회일수록 삶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삶의 질을 갉아먹는 온갖 낭비와 불합리한 관행들을 그대로 둔 채 성장률을 높이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어리석다. 당장 다른 나라에는 없는 사교육만 그만두어도 한결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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