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남의 땅, 우리 기름] (6) 베트남의 한국인

15년 쌓은 투지와 끈기…BP社도 무릎<br>가스관 연결 난관에 베트남정부·BP 설득 성공<br>1년만에 원유저장선 건조, 합작사 신뢰얻기도<br>"하루 가스2,900톤·원유4,200배럴 생산 눈앞"


베트남 11- 2광구 롱도이 가스전 플랫폼 위에서 석유공사의 현장 직원들이 가스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뒤로 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베트남 남부 최대 도시 호찌민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2시간을 달려 붕따우 헬기공항에 도착한 뒤 18인승 헬기 ‘슈퍼퓨마2’에 몸을 실었다. 시속 120노트로 1시간30분여를 날자 망망대해에 인공 철탑 섬이 나타났다. 우리 손, 우리 기술로 남의 땅에서 처음 개발한 가스전, 베트남 11-2광구 내 ‘롱도이’(雙龍ㆍ쌍용)였다. 가스전 플랫폼의 헬기 착륙장에 내리자 롱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2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박세진 석유공사 베트남 사무소장은 “하나는 생산 중인 가스의 불꽃이고 다른 하나는 시추 중인 가스의 불꽃”이라며 “2개 불꽃이 동시에 뿜어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롱도이 가스전에서는 2개의 시추공에서 현재 가스가 생산 중이고 생산량 증대를 위해 5개의 생산공을 더 뚫고 있다. 세계적 시추사인 엔스코(ENSCO)의 도널드 셀러스 롱도이 현장 시추선장은 “오는 4월이면 생산공 작업이 모두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소장은 “5월부터 하루 2,900톤의 가스와 4,200배럴 정도의 원유가 동시에 생산될 것”이라며 “앞으로 23년 동안 이같이 생산하면 총매출액 16억달러에 약 5억달러의 순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2년 베트남에서 사업권을 따낸 11-2광구에서 가스와 석유를 끌어올리기까지 지난 15년은 그야말로 사투의 연속이었다. 동행한 이억수 전 석유공사 사장은 “이곳에 뿌린 한국인의 땀과 눈물을 합치면 저수지 하나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를 비롯해 LG상사ㆍ대성산업ㆍ대우인터내셔널ㆍ현대종합상사ㆍ삼환기업ㆍ서울도시가스 등으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은 태풍과 맞서 싸우며 죽을 고비도 넘겨가며 3년여의 탐사 끝에 98년 가스 발견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매장량이 초대형은 아니어서 320㎞ 떨어진 육지까지 가스관을 잇자면 적자가 날 형편이었다. 물거품이 될 뻔한 11-2광구 롱도이 가스전은 2002년 기사회생했다. 5대 메이저 중 하나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인근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개발, 장거리 가스관을 설치한 것. 문제는 BP의 가스관에 우리 측 선로를 잇는 일인데 BP가 거부했다. 롱도이 가스전 주변에 추가로 개발할 자사 가스전의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롱도이를 죽일 셈이었다. 지금은 아군이 된 BP와의 2년 전쟁이 2003년 5월 막이 올랐다. 베트남 정부를 설득해 가스매매계약을 체결하고 BP를 압박했다. BP도 마냥 안 된다고 할 수 없게 돼 마침내 가스관 이용을 허용했다. BP는 대신에 원유는 수송관을 이용할 수 없다고 막았다. 돌파구를 찾은 석유공사는 윤진용 과장을 중심으로 긴급히 팀을 구성해 원유저장선(FSO) 건조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BP는 석유공사가 시한을 맞추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윤 팀장은 단 1년 만에 중국에서 30만배럴 규모의 FSO를 건조해 이를 타고 롱도이 해상에 나타났다. BP가 깜짝 놀란 것은 물론 석유공사의 합작사인 페트로베트남(PV)도 입이 쩍 벌어졌다. 11-2에서 단 한푼의 이익도 기대하지 않았던 PV의 응우옌당리우 부사장은 기자에게 “석유공사는 이제 베트남에서 신뢰의 상징이며 PV 최고의 친구”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석유공사는 BP의 남콘손파이프라인(NCSP)까지 58㎞만 가스관을 이어 베트남 붕따우 인근 푸미공단에 롱도이에서 생산된 가스 전량을 공급하고 있다. 원유는 저장선에 있다 구입처에서 유조선을 보내 현장에서 곧장 실어가고 있다. 석유공사는 최근 롱도이 인근에서 유망 가스전 구조 2곳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승국 석유공사 11-2광구 개발팀장은 “롱도이를 축으로 해서 롱바이타이 구조 등으로 탐사ㆍ개발을 확대하면 11-2광구에서 생산되는 가스와 원유는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며 “기초 생산시설이 만들어져 수익성이 엄청나게 증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롱도이에는 이 팀장을 비롯해 22명의 한국인이 동남아 등 15개국 출신 137명의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망망대해에서 4주씩 유배생활을 하는 그들은 고립돼 있다는 심적 부담감이 만만치 않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박세진 사무소장은 “현장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바다를 보면 이따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멍한 정신상태가 찾아온다”며 “현장과 연락을 하다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일당 1,000~2,000달러를 받는 외국계 엔지니어와 달리 박봉에 시달리는 석유공사 일꾼들은 24시간 꺼지지 않는 롱도이의 불꽃과 함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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