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를 때마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작품이 받아들여질지 항상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졸입니다. 그래서 매번 많은 고민을 하고, 수없이 수정한 끝에 무대에 올리지요. (관객에 대한) 두려움이 승화돼 작품의 보편성을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국이 인정한 셰익스피어의 거장이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연출 거장으로 꼽히는 니나가와 유키오(79ㆍ사진)가 18일 오전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적인 거장이 된 비결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오는 21~23일까지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선보이는 연극 '무사시'는 에도 시대 초기였던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이자 전설적인 무사로 이름을 날린 미야모토 무사시와 그의 라이벌 사사키 코지로, 이 두 검객 간에 벌어진 최후의 진검승부를 소재로 한 작품. 지난 2011년 셰익스피어 원작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후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무대로, 일본의 대표적인 스타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와 차세대 청춘 스타 미조바타 준페이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니나가와식 연출법은 막이 오르자마자 극 초반에 관객이 몰입하게 된다고 해서 '3분의 마법'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그는 지나치게 논리적이거나 대사에 의존하는 근대 리얼리즘 연극을 비판하며 눈으로 보고 황홀감을 느끼는 '눈의 연극'을 주창해 왔다. "어렸을 적 연극을 보러 가면 극 자체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던 기억이 많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의 고민을 잊고 싶어 공연장을 찾는데, 몰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연극으로서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무대 위의 모든 메커니즘을 동원해 연극이 시작된 후 3분 안에 관객이 빠져들도록 합니다. 시작적인 효과가 대표적인데 엄청난 규모의 군중 장면을 극 초반 넣는다든지 음악과 조명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 등이지요. 이번 작품에선 대나무 무대 장치와 두 주인공의 화려한 무술 댄스 등이 극 초반 관객들을 사로잡을 겁니다."
대표적인 전후 세대 연출가이기도 한 그는 "무사시를 통해 복수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는 원한의 사슬을 보여줌으로써 복수의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소재와 3시간이 넘는 긴 공연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사시'는 서정적인 무대 미학과 극을 관통하는 유쾌한 웃음에 힘입어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이유에 대해 그는 "보편성을 통해 작품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보편성은 일반적인 의미의 보편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본 관객들이 영국에서 만든 셰익스피어 작품을 보고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려워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다 문화적 배경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은 특히 시각적 효과에 신경을 많이 써요. 벚꽃이나 불단(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단) 등 눈에 익은 소재를 설치하거나 아시아인만의 신체 움직임을 드러내 관객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지요. 서양 문법으로 연극을 만들어야 세계의 보편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내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