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인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담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다 높아 지난해 세율을 내리기로 했는데 최고세율을 다시 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내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역행하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남대문 상공회의소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기념 인터뷰에서 손경식(73ㆍ사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요즘 연말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득표를 위해 이슈화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증세 논의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해 기업들에 어려움이 온다면 경제민주화 논의 자체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또한 손 회장은 경기불황과 정치변혁기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기업들에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사업과 투자를 생각할 때"라며 "지금이 어려운 때라면 앞으로 밝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그는 "기업의 역량이나 경쟁력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때 길러지게 마련"이라며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난을 예측하고 힘을 기르다 보면 결국 지금 이 순간이 역량을 축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손 회장은 정치권이 복지재원을 마련하려 증세를 추진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손 회장은 무엇보다 현재 기업 관련 조세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상속세라고 꼬집었다. "상속세 부담도 아주 커요. 세율 자체가 높은데 주식상속의 경우 지배주주는 10~30%의 할증과세가 있어 이를 반영할 경우 최고세율은 55~65%까지 가죠. 경영권 승계를 위협하는 수준입니다."
그는 세율뿐 아니라 상속세 부과기준과 할증과세도 외국에 비해 국내 제도가 기업에 불리하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손 회장은 "다른 나라는 실제 상속받는 이가 갖게 되는 재산을 기준으로 누진세를 적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버지의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부과한다"며 "우리나라는 결국 아들 등 여러 상속자에게 재산이 나뉘기 전 많은 금액을 기준으로 누진세를 부과해 세율이 높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손 회장은 "기업이 대를 거쳐 이어지고 투자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나"라며 "인계 받는 이가 안심하고 투자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상속세 문제는 고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과의 대화는 최근 상의가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증세 관련 조사 결과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70% 이상의 기업이 각종 증세안을 반대했으며 증세기조가 유지될 경우 69%가 철수를 고려한다는 게 조사 결과의 골자다. 이와 관련, 국내 조세정책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정서를 묻자 손 회장은 "비단 외국계 기업뿐 아니라 국내 기업도 우리나라 조세정책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법인세율 자체는 우리나라가 높다고 할 수 없다"며 "다만 GDP와 법인세율을 견주면 우리나라의 세율은 OECD 평균보다 높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복지 문제에 대해 나름의 원칙을 제시했다. 복지정책에 대한 그의 결론은 '재정과 복지의 균형'이다. 그는 "복지는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재정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각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의 수준을 높이면서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법인세를 손보려는 것을 각별히 경계했다. 그는 "물론 복지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복지를 바탕으로 해야 사회가 작동하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며 "다만 그리스 등 재정에 대한 고려보다 복지에 방점을 둬 어려움을 겪은 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우리가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제약과 간섭을 필요 이상으로 받게 된다면 결국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정치권에 촉구했다. 손 회장은 무엇보다 경제민주화 등 기업 담론의 바탕에는 대기업에 대한 폭넓은 시각이 전제돼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순환출자를 예로 들며 "순환출자는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한 방법이며 이를 통해 사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며 "순환출자 제한에 해당하는 기업이 많으냐는 점을 떠나 이런 기능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 문제에 대해 손 회장은 대선 분위기가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까지 안정된 노사문화가 정착되는 분위기라서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선거가 다가오며 다른 분위기가 일어 걱정하고 있다"며 "노동법 개정을 통해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과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가 성립됐지만 이를 다시 없애자는 목소리가 있어 노사관계의 근본 틀이 깨질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많은 일자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논의돼야 하지 않겠나"고 덧붙였다.
대기업 고용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단선적 시각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손 회장은 "예전 경기도의 한 공단에 있는 대기업을 방문했을 때 직접고용 인력은 2,0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공단 내 그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진 협력업체의 일자리는 10배 수준이었다"라며 "대기업의 직접고용 숫자보다는 협력업체에 얼마나 많은 일거리를 가져다 주는지 넓게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상의는 기업가들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칙 아래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손 회장은 기업 스스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업 스스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재계의 요구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손 회장은 "단지 이익을 많이 내는 게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업의 도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업도 사회 구성원인 만큼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특히 개인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큰 만큼 공정성 등 수익창출 이상의 임무를 다한다면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인정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 회장은 동반성장에 대해 기업 스스로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갑이니 을이니 하는 거래문화는 대기업들이 앞장서 바꿔나가야 합니다.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협력업체가 좋은 부품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대기업도 협력업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협력업체가 능력을 갖도록 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손 회장은 "지금까지 계약에서 협력업체를 가볍게 본 경향이 있다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이번 기회에 의지를 가지고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다만 동반성장 문제는 법 등 기업 당사자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추진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동반성장 논의의 초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통틀어 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이는가에 맞춰져야 한다"며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 다양한 관계와 조건, 특수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마음이 닿아서 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어 붙이려 한다면 과연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효과가 있더라도 며칠을 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기도 한 손 회장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에 부합하는 규제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존재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규제를 없애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현상황에서 아직은 완화하는 편이 더 나은 불필요한 규제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일례를 들면 우리나라는 개방형 의료법인이 들어올 수 없는 진입규제가 있는데 인도 뭄바이의 경우 이 같은 규제가 없어 연간 100만명 이상이 지역을 찾아 의료 및 관광 소비를 한다"며 "뭄바이거래소에 등록된 의료법인 수만도 110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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