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삶의 첫 문장

필자는 가을이 되면 대학 졸업이 생각난다. 세칭 김신조 사건으로 군복무 기간이 6개월 연장돼 가을에 졸업을 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졸업’이라는 말은 학교수업을 마친다는 ‘마감’을 뜻하는데 미국에서는 졸업을 ‘커멘스먼트(Commencement)’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말은 ‘마감’과는 정반대로 ‘시작’을 의미한다. 즉 졸업은 학교라는 보호구역을 떠나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위대한 ‘시작’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탐정소설가 메리 클라크(Mary Clark)는 대학의 졸업 축사에서 졸업은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주인공은 각자 자신이고 구성은 각자가 삶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작하는 첫 문장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한 방의 총성이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로 시작되는 소설같이 적당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탐구를 하듯이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를 한 후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지 어언 30여년…. 나의 삶에 관한 소설의 첫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첫 문장이 있었는지조차도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공자 가로되 남의 말을 순순히 듣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된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아마도 정열과 패기가 가득한 사원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들의 젊음에 의해 스스로의 노화를 잊어버리고 살아왔기 때문인 듯싶다. 그런데 요즈음 필자도 늙어가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하는 것이 세월과 연륜에 걸맞게 늘어나 있는 거울 속의 주름살과 귀밑에 갈대처럼 길어져 있는 흰머리이다. 아직은 지하철을 타도 자리를 비워주는 젊은이도 없고 고령화의 기준이 되는 나이까지는 몇 년이 남아 있는데 하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이제 슬슬 나이에 관심이 드는 것은 졸업 후에 써온 삶의 소설이 서서히 ‘마감’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감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니 나이든 만큼 이에 걸맞은 지혜를 깨달아 귀중한 생활 철학이나 슬기를 가지고 삶의 다양한 색채와 깊이와 의미를 제공하는 새로운 소설의 첫 문장을 생각할 때가 왔나 보다. 먼 훗날 “아, 그때 나 젊었을 때 첫 문장이 …였는데”라고 흐뭇해 하거나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당장 오늘 하루 삶을 시작하는 글은 무엇으로 할까.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은 언제나 지상에서의 내 나머지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니 말이다. ‘축하해’ ‘고마워’ ‘미안해’라는 배려의 말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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