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솔직함에 있다. 전작인 '극장전'부터 그 이전 작품들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생활의 발견' 등에서 홍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인간과 그 관계들을 미시적으로 관찰해 솔직하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렇게 해서 창조된 인물들은 대체로 속물들이며 한마디로 '찌질하다.' 대부분 지식인들인 그의 인물들은 영화 속에서 온갖 위선을 떨어대지만 그 속내는 관객에게 금세 노출된다. 코미디도 아닌 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이들의 위선을 제3자적 입장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21일 공개된 일곱번째 작품 '해변의 여인'에서도 마찬가지.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감독인 중래(김승우)다. 촉망받는 영화감독인 중래는 차기작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지만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후배 미술감독 창욱(김태욱)을 꼬여 서해안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데 창욱의 애인이라며 여행길에 같이 동행한 문숙(고현정)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중래는 창욱의 눈을 피한 끝없는 '작업' 끝에 문숙과 하룻밤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중래도 돌변을 한다. 지난밤 사랑을 나누며 끝없이 '사랑한다'말했던 중래는 정작 하룻밤 격정이 지난 후에는 문숙과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그리고 이틀후 홀로 다시 내려온 해변에서 유부녀 선희와 또 다른 하룻밤 로맨스를 시작한다. 영화감독 중래는 홍상수 브랜드 영화의 전형적 주인공의 모습. 어느 정도 사회적 성취도 했고 머리 속에 많은 지식도 가지고 있지만 일회적 쾌락에 일희일비하고 충동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순간의 쾌락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해 대는 그의 모습이 우리들 사는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 없기에 관객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음과 연민 등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문숙과 선희라는 여성캐릭터는 홍상수의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 여성을 지나치게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문숙과 선희가 중래라는 위선적 인물을 통해 한단계 성숙하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유연하다. 관심을 모은 고현정은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문숙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속에 절묘하게 녹아 들어 위선적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한 김승우도 쉽지 않은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