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3월 16일] 벽난로와 지하벙커의 차이

케인스의 경제이론을 추종하는 이들이 경기부양의 촉진제로 선호하는 공공투자의 효과는 사실 지금까지 주요국들의 경제통계에서 확실히 증명된 게 하나도 없다. 일본의 공공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책은 '아무도 건너지 않는 다리'를 건설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낭비성 공공투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일본은 경기부양 실패로 가장 위험한 장기침체로 이어진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 허버트 클라크 후버 대통령 시절 생긴 대공황에서 미국 경제를 '탈출 시킨'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의 뉴딜정책이 미국경제를 과연 구했느냐, 아니면 경기침체를 도리어 연장시켰느냐에 대한 미국 학계에서의 토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공적 가운데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둡고 어려운 시절 힘들어 하는 미국민들에게 한줄기 빛이 됐다. '노변정담(벽난로 옆에서의 대화)'으로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리고 경기부양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국민에게 그는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그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고 따스한 말씨로 안심시켰고 국민들은 그의 말을 믿었다. 취임 1주년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 하나는 확실히 챙기겠다는 약속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 청와대를 지키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전혀 앞으로의 경제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모든 게 불안한 것이다. 치솟는 원ㆍ달러 환율은 대외적 경제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이것만으로 모두 설명해주지 못한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제 경제상황 이상으로 올라가는 원ㆍ달러 환율에 대한 불안감은 경제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불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자꾸 루스벨트의 '벽난로'와 청와대의 '지하벙커'가 비교되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 지도자는 어려운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따스한 느낌을 주는 벽난로를 택하고 또 한 지도자는 비상상황을 연상시키려 지하벙커를 택했다. 너무나 대비되지 않는가. 과거 한국에서는 무슨 비상시국이 있으면 어떤 이들이 광장에 나와 머리를 빡빡 깎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남에게 자기의 결연한 의지를 봐달라는 의미였으리라. 어린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지면 눈썹을 밀어버리고 성적이 올라갈 때까지 밖에 부끄러워 못 나가게 자신을 어렵게 해놓고 결의를 다지는 귀여움도 있었다. 청와대의 지하벙커도 그런 자기 성찰의 의미로 보여진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의 경우와 다르게 지하벙커를 만든 이들은 귀엽게 보여 지지 않는다. 지하벙커는 청와대에 만들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의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현명했다. 자기 자신의 불안감을 접고 자기 당 정파들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나라를 생각해서 큰 마음으로 포용성 있는 지도자로 나선다면 어떨까. 출신 지역과 교회ㆍ학교ㆍ당내계파를 따지지 않는 지도자가 더 큰 지도자가 아닌가. 그런 다음에 국민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간다면 국민들이 지도자를 더 믿게 되지 않을까. "내년 상반기 국민총생산이 몇% 내려갈 것이다"는 얘기는 대통령이 아니라 경제통계담당국장이 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그런 어려운 발표가 나올 때 두렵고 어려워할 국민들을 안심시킬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확신을 갖고 대처할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것이 어려운 시대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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