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역습이 시작됐다.
올 들어 시장을 억눌렀던 북한 리스크, 엔화약세 등 각종 악재들이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일본ㆍ미국 등에 비해 오르지 않던 한국 주식시장이 상승랠리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엔ㆍ달러 환율이 최근 100엔대로 떨어지고 일본 닛케이지수도 급락하면서 아베 노믹스가 한계를 보이자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게다가 6월부터는 추가경정예산, 기준금리 인하 등 정부의 경기부양책 효과가 나타나고 미국 경기도 본격적인 회복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돼 대세 상승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돌아온 외국인 '서머랠리' 이끈다=한국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금의 수급이다. 특히 외국인의 자금 유출입이 주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외국인은 올 초부터 뱅가드의 벤치마크 지수변경에 따른 한국 주식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시작해 무서운 기세로 한국 주식을 팔아 치웠다. 올들어 지난달 15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4,68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한때 1,900선을 위협받기도 했다.
외국인은 5개월 여만인 지난달 중순부터 국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중순(16일)부터 말까지 불과 보름 만에 1조4,000억원 가량을 사들였다. 외국인의 귀환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두 달 만에 2,000선을 탈환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돌아온 것은 시장을 억눌렀던 각종 악재가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뱅가드의 물량조정이 80% 가량 진행됐고, 북한 리스크는 더 이상 증시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요소로 안정됐다. 특히 한때 103엔까지 치솟았던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대로 떨어져 엔화약세 충격파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비록 시장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하진 못했지만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정책 호재도 나왔다.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됐으며, 정부는 상반기에 70%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통화위원회도 기준금리를 0.25% 인하해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여기에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대에 안착하면서 외국인들이 투자하기 좋은 여건도 형성됐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분석팀장은 "그 동안 지속됐던 악재로 한국 증시의 저평가 정도가 사상 최악 수준"이라며 "최근 일본 닛케이지수가 급락하는 등 일본 경제에 불안감을 느낀 글로벌 투자가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코스피지수 2,200~2,300 갈 것"=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전 고점인 2,040은 단기간에 돌파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달부터 국내외에서 호재들이 연이어 등장해 하반기에는 2,200~2,300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본다.
우선 엔화약세 충격이 해소되면서 해외시장에서 일본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일본닛케이225지수는 엔ㆍ달러 환율이 103엔을 향해 가파르게 치솟았던 보름 전(15일) 보다 10%나 급락했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같은 기간 1.4% 올랐다. 이달 중에 유로존이 추가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각종 경기지표도 경기회복을 알리는 등 글로벌 경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회복은 중국의 경기회복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시장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는 호재다. 여기에 주요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나온 국내 경기부양책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곽병열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 국내 증시는 글로벌 증시와의 격차를 축소하는 강세 국면을 보일 것"이라며 "코스피지수는 1,980~2,080선을 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석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약세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아시아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증시로 외국인과 기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현재 지수 보다 10~15% 정도 높은 2,200~2,300대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ㆍ전자ㆍ컨텐츠 등 소비ㆍ수출 대형주 주목해야= 증시전문가들은 뱅가드의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외국인이 많이 팔았던 전자ㆍ자동차ㆍ소프트웨어 등을 유망업종으로 꼽고 있다. 특히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동안 대형 업종이 코스닥, 중소형주, 우선주 등의 랠리에서 제외됐었던 만큼 상승여력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5일 이후 유가증권에서는 SK하이닉스ㆍ삼성전자ㆍ현대모비스ㆍLG화학ㆍ기아차를 코스닥시장에서는 파트론ㆍ위메이드ㆍ서울반도체ㆍ파라다이스 등 시가총액 상위기업들의 주식에 많이 투자했다.
이대상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시가총액이 큰 업종들 우선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며 "기업가치는 낮게 평가되어 있으면서 수익성은 높은 에너지ㆍ자동차ㆍ반도체ㆍ은행ㆍ유통 업종이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달 29~30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229억원의 강력한 순매수를 보였지만, 삼성전자 주식만 3,000억원 가량을 사는 심각한 편식현상을 보였다.
일본과 경쟁강도가 높은 자동차 등 수출 중심 업종의 전망도 밝다. 엔화약세가 완화되면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엔화가치가 1% 낮아지면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약 7,700억원, 닛산은 2,100억원, 혼다는 1,800억원 증가한다. 반면 원화가치가 1% 상승하면 현대ㆍ기아차의 영업이익은 5,000억원 가량 줄어든다. 역으로 엔화가치가 높아지고,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재의 추세가 이어지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박정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본 증시와 엔ㆍ달러 환율이 고점을 지났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그 동안 엔저에 발목이 잡혔던 업종들이 다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