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비만은 죄 '공공의 적' vs 허구의 질병 '공상의 적'

■비만의 사회학<br>미국 등 선진국 정부 차원 퇴치운동속<br> "위험성 과대포장 다이어트 효과도 허구<br>식품·의료 사업 배후설… 기형적 현상"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인 케빈 스미스(39)는 지난 2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버뱅크행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려다 좌석 한자리에 앉기에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비행기에서 쫓겨났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감독의 팬들로부터 비난이 거세지자 항공사측은 100달러어치의 상환권을 지급하면서 사과의 뜻을 전달, 서둘러 사건을 진화했지만 미국내에서 비만 할증료 부과에 대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과 옆 좌석 승객을 위해 비만 승객에게 추가 좌석요금을 물려야 마땅하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선 이 논란은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비만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증명해주기에는 충분하다. 미국 ABC 뉴스 인터넷판은 최근 10년간 미국인의 생활을 바꾼 50가지를 선정해 지난해말 발표했는데 비만도 그 중 한가지로 포함돼 있다. 뉴욕시는 트랜스 지방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앨라배마주는 과체중의 주 공무원들에게 세금을 물릴 만큼 비만은 미국 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사실 반세기 전만 해도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는 빈곤과 기아였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에도 급급했던 시절 비만은 몇몇 나라들의 '배부른 고민'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인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비만에 관한 10가지 사실'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인구 60억명 가운데 성인 10억명이 '과체중'으로 분류되며 그 중 3억명은 '비만'에 해당된다. 지난 20세기 후반 인류 건강의 최대의 적이 에이즈였다면 21세기는 비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정도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영양학 교수이자 공중보건대학원 산하 비만연구소장인 배리 팝킨은 최근 자신의 저서 '세계는 뚱뚱하다'(시공사 펴냄)에서 "비만을 몰고온 음식섭취와 활동방식의 변화를 멈추지 못한다면 수천 년 후엔 오직 지방을 저장하지 못하는 인류, 즉 단 음식을 멀리하고 육체활동을 선호하는 사람들만 생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는 지금 비만과의 전쟁중= 비만이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는 비만과의 한바탕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17일 미국 상원의회는 콜라, 초콜릿, 감자튀김 등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음식인 일명 '정크푸드'의 학교 내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10년간 45억달러를 투입해 학교급식의 영양 프로그램을 개선시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미국 의회가 학교급식을 위해 연방차원에서 예산을 늘린 것은 1973년 이후 처음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동 비만퇴치 캠페인인 '렛츠 무브(Let's Move)'도 펼치고 있다. 식품업체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최대 식품회사인 크래프트는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소금 함유량을 향후 2년간 10% 이상 줄이기로 했으며 펩시도 전세계 학교에서 고칼로리 콜라를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마이클 린튼 소니픽처스 회장은 지난 17일 영화관 간식의 '터줏대감'격인 팝콘 대신 요구르트, 시리얼 바, 과일 야채 샐러드 등 건강에 좋은 웰빙 간식을 판매할 것을 영화관측에 제안했다. 린튼 회장의 제안 역시 팝콘의 높은 열량과 지방을 지적하면서 비만에 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다. 미국 못지않게 최근 비만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유럽에서도 비만과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 비만관리부를 신설하며 비만과의 전쟁을 공식 선언한 영국은 국민건강 증진대책 마련과 함께 승강기 대신 계단 이용하기, 과일과 야채 많이 섭취하기 등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초 청량음료에 부과하는 '소다세'를 도입한 덴마크는 조만간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에도 비만세를 부과해 제품가격을 대폭 올릴 계획이며 루마니아는 아동 비만을 줄이기 위해 세계 최초로 맥도날드와 KFC의 패스트푸드에 비만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독일은 녹색당을 중심으로 어린이 TV 프로그램 방영시간에 설탕이 다량 함유된 과자와 단 음식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항공사 에어프랑스는 4월부터 살찐 이들에게 비만 할증료를 부과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비만과의 전쟁은 바다를 건너 국내에도 갑작스럽게 불어닥쳤다. 정부는 최근 어린이 비만을 초래하는 고열량 저영양 식품의 TV 광고를 어린이들의 주 시청시간대인 오후 5~7시에 방영하지 못하도록 한데 이어 학교 내 비만식품 판매도 금지하고 있다. 금천구 보건소는 최근 지역 내 비만 주민에게 무료로 영양지도 및 운동교육을 실시하는 '건강운동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북구 보건소도 다음달 7일부터 허리둘레가 각각 90cm(36인치)와 85cm(34인치)를 넘는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비만탈출 9085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군대도 예외가 아니어서 육군 전체 신병교육부대의 90% 이상이 '다이어트 소대'를 도입했다. ◇'비만과의 전쟁'에 반기 드는 사람들= 하지만 전세계적인 비만과의 전쟁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과연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자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공공의 적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비만 히스테릭'(지성사 펴냄)에서 "비만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질병"이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비만의 위험성이나 다이어트의 유용성 역시 모두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체중이 높을수록 사망률이나 질병 발병률이 높다는 기존 연구결과들의 오류를 꼬집는다. 예를 들어 '과체중이면 심혈관 질환의 유발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에 대해 이 교수는 운동과 체력, 다이어트 습관, 스트레스 등의 변인을 고려하지 않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실제로 1980년 노르웨이에서는 10년간 1,800만명의 건강정보를 추적한 결과 미국 기준으로 과체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됐으며 비흡연 남성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조사에서도 적정한 체중과 비만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의 사망률이 같았다는 것. 이 교수는 체지방에 대해서도 "현대인들의 평균치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정상 체지방량'이란 없으며 '평균 체지방량'만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왜 현대인들은 그토록 '살과의 전쟁'에 집착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비만을 죄악시하도록 종용하는 우리 사회의 다이어트 관련산업과 과식을 부추기는 식품산업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한다. 배리 팝킨 교수는 식품산업과 의약산업이 비만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산업은 과도한 칼로리 섭취가 비만의 핵심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외면한 채 비만을 개인의 식습관 탓으로 돌리거나 운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택 교수는 "의료산업과 제약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질병은 '그 질병에 시달리게 하면서도 죽지 않게 하고 효과적으로도 치료도 안 되며 그러면서도 의사나 환자가 치료를 위해 달려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만은 가장 이상적인 질병으로 포장하기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 국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A. 케슬러 박사는 최근 저서 '과식의 종말'(문예출판사 펴냄)에서 "비만의 원인인 과식을 부추기는 현대 식생활 문화의 이면에는 식품업계의 이해관계가 숨어있다"고 고발한다. 인간이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한 이후에도 계속 입 속에 음식을 넣는 것은 감칠맛 나는 음식으로 인한 자극 때문인데 살을 찌게 만드는 고당분ㆍ고지방ㆍ고염분 음식을 먹으면 우리 뇌의 기본 세포인 뉴런은 더욱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식품회사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설탕ㆍ소금ㆍ지방의 적정 비율을 이용해 감칠맛 나는 메뉴들을 개발하는 반면 그 안에 이들 성분의 함량을 정확히 표시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알아볼 수 없게 표시해 과식과 비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이다. 하정희 한양사이버대 심리학과 교수는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극도 비만이 아닌 이상 뚱뚱하다는 것은 외모의 특징일 뿐인데 우리 사회는 마치 모든 비만을 질병처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결국 날씬하고 마른 사람만이 미인으로 대접받는 풍토 속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살 빼기 열풍을 '몸의 사회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송 교수는 "상업 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21세기 인간의 몸은 날씬하고 마른 몸매를 요구하는 사회적인 잣대에 맞춰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제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사회의 것으로 바뀌었다"며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살을 빼야 한다고 강요하는 문화는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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