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3일] 조선토지조사령


1912년 8월12일,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령을 내렸다. 전문 19조, 부칙 2개항으로 이뤄진 토지조사령의 목적은 소유관계 조사. 땅 주인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토지조사를 위해 일제가 동원한 인원만 연 15만2,600여명. 돈도 요즘 가치 3,978억원에 해당되는 2,040만엔을 투입했다. 일제는 왜 조선 땅을 샅샅이 뒤졌을까. 식민지 수탈을 위해서다. 1918년 끝난 토지조사 결과 실측된 경지면적은 434만2,091정보. 1910년 추정치 239만9,812정보보다 80.9%나 늘어난 새 땅의 대부분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일본 농업자본, 거대 지주의 몫으로 돌아갔다. 반대로 농민들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근대적 토지제도에 대한 몰이해와 일제 시책에 대한 반발로 조사에 응하지 않은 농민은 소유권을 빼앗겼다. 더 큰 문제는 대대로 누려온 경작권의 상실. 모든 땅은 본 주인은 임금이라는 왕토(王土)사상 아래 양반이나 지주라도 임금으로부터 수조권(收組權), 즉 사용료 징수권을 위임받은 데 불과할 뿐 경작권은 농민에게 있다는 토지제도의 근간이 무너져 농민은 노예적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체 농가의 79.6%에 달하는 소작ㆍ자소작 등 영세농민들은 경작권뿐 아니라 개간권마저 잃었다. 황무지를 일궈 자영농이 될 기회마저 원천봉쇄당한 농민들의 선택은 유랑. 30만가구의 농가가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떠났다. 반면 재산권을 보장받게 된 지주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친일집단으로 변해갔다. 토지조사에 따른 반사이익이 친일세력 확산으로 이어진 셈이다. 오늘날에도 일제토지수탈의 흔적은 여전하다. 독도 면적의 350배에 이르는 땅이 총독부나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다. 친일파 후손들은 시장논리를 들먹이며 조상 땅 찾기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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