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제 파업의 깃발을 걷어라] <5·끝> 파국의 길에서 'U턴'을

'노사협력→수익·고용안정' 구축해야<br>소모적 대립구도 못깨면 글로벌경쟁서 낙오 불가피<br>BMW·도요타처럼 위기의식 공유하는 조직문화 절실

'올해를 무파업 원년으로!' 현대자동차 노사 대표들이 3일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10일 만에 회의를 갖고 파업 돌입 여부를 판가름 짓는 임금협상을 벌이고 있다./울산=이성덕기자


“우리(BMW) 유전자 속에는 ‘결코 1959년을 잊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항상 존재한다. 이 위기 유전자가 우리의 성과를 창출한다.”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그룹 회장) 세계 자동차업계의 선두주자인 BMW와 도요타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BMW는 심각한 재정악화에 처했던 지난 59년 메르세데스벤츠에 합병당할 뻔한 위기에서 대주주(크반트家)의 사재 출연과 노조의 전폭적인 협조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1949년 경영위기가 시작된 도요타도 ‘80일간의 노조 파업’이라는 53년의 최악의 위기를 계기로 ‘다시는 이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노사가 공유했다. 벼랑 끝까지 밀렸던 BMW와 도요타는 추락 직전 노사협력을 발판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이다. ◇더 이상 물러설 때가 없다=현대자동차의 현주소는 50~60년 전 도요타나 BMW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성 악화와 내수부진, 해외판매 저조, 환율하락, 유가상승 등 각종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만성적인 노조 파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먹구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노조 파업은 생산성 저하는 물론 그동안 국내외 시장에서 쌓아온 회사 이미지와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낮은 생산성과 높은 원가, 경쟁사를 능가하지 못하는 품질경쟁력 등은 글로벌 무대에서 먹이가 될 뿐 시장을 호령하는 패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 깃발은 현대차의 파국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당장 현대차가 피인수되거나 공장이 문을 닫을 정도의 심각한 위기상황은 아니더라도 자칫 그릇된 경영판단이나 노조의 잇단 파업은 언제라도 파국의 길로 직행할 수 있는 처지라는 얘기다. ◇전세계 생산기지 곳곳서 ‘빨간불’=현대차의 위기상황은 올 들어 해외시장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의 경쟁심화와 미국의 내수부진은 현대차 앞길에 빨간불로 작용, 급기야 판매목표를 잇달아 하향 조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올 들어 판매부진을 거듭하던 베이징현대차는 올해 목표를 31만대에서 무려 16.1% 줄어든 26만대로 낮췄다. 지난 5월부터 딜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부진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한번 꺾인 추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치열한 가격경쟁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눈높이를 낮추기 시작했다. 여기에 덧보태 가격인하라는 극약처방도 단행했다. 현대차는 1일자로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XD)는 대당 1만4,000~1만5,000위안(약 174만~186만원), EF쏘나타 1만6,000위안(약 200만원), 엑센트(베르나) 5,000~8,100위안(약 62만~100만원)을 각각 내려 모델별로 6~14% 인하라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에 앞서 현대차는 7월 해외법인장 회의에서 올해 미국시장 판매목표를 당초 55만5,000대에서 51만대로 8%가량 낮추기도 했다. 시장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지만 같은 기간 도요타ㆍ닛산 등 경쟁사의 판매증가와 비교하면 사실상 판매 부진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세계 자동차시장은 ‘주춤하는 순간 뒤처진다’는 치열한 경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는 노사간 소모적인 대립구도를 깨지 못하면 곧바로 경쟁사의 재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국내외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 노조는 지금이라도 파업의 깃발을 거두고 현재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측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회사 측도 노조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식해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노사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은 “현대차가 노사문제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니 정작 글로벌 경쟁에선 크게 뒤처진다”면서 “노사가 계속 대립한다면 결국 서로가 망하고 만다”고 경고했다. ◇위기의식을 ‘U턴’ 추진력으로 삼아야=현대차가 치열한 경쟁구도와 경영환경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려면 생산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며 생산 유연성은 노사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이와 관련해 유연성 확보의 기본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이는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자발적 개선과 노동의 기능적 유연성 확보→생산의 유연성 확보→고용과 수익의 안정→고용안정에 대한 신뢰형성’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안정적인 성장을 실현하려면 협력적 노사관계가 필수불가결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희식 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면 BMW나 도요타의 사례처럼 노사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현대차 노조는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행부는 파업결의에도 불구하고 교섭의 끈을 놓지 않은 데다 노조원들은 소모적인 파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과 소비자들의 반대 여론에 위기 의식의 발로로 해석된다. 파국의 길로 질주하던 현대차가 노조의 과감한 결단으로 ‘U턴’ 하기를 국민 모두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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