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불확실성과 규제

지난 2003년 초. 당시 우리나라의 주가 수준은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700선을 웃돌았던 종합주가지수는 그해 들어서 곤두박질쳐 한때 500선 초반까지 떨어졌다. 현재 주가의 4분의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외국인도 기관도 증시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조그마한 악재에도 주식시세판은 온통 퍼렇게 ‘멍’이 들었다. 당시 증시를 압박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들었던 SK글로벌 사태도, LG카드 사태도 아니었다. 바로 ‘불확실성’이었다. ‘이라크전쟁 위기’와 ‘북한의 핵 동결 해제’ 등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과 증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시대를 지내야 했다. 최근 정부의 통신정책을 보면 마치 그때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다. 최근 정보통신사업법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이것을 실감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개정안이 사업자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알려진 내용은 본래 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별정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과 매출 규모, 그리고 요금 수준까지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은 경쟁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기업의 위법성 여부를 놓고 반년 가까이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통신위원회의 행보도 이해하기 힘들다. 통신위에서는 ‘사안의 파장이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라고 이유를 달고 있지만 그럴수록 결단력 있는 판단이 요구된다. 기업이 불안해 하고 시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신사업에 대해 ‘예측 가능한 규제’를 외쳤다. 계획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해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은 ‘예측 가능한 규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규제’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은 악재와 다르다. 악재는 문제와 위기의 근원이 분명히 제시되지만 불확실성은 그 모든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과 시장이 불안해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3년에 경험했던 불확실성의 악몽을 지금의 통신시장에서 재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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